국회, 항소 거듭하며 시간 끌기 논란
“20대 임기 후 공개 전략” 지적 나와
국회의 오랜 관행인 ‘깜깜이 예산’ 편성에 대해 법원이 잇따라 제동을 걸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쌈짓돈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온 특수활동비와 정책개발비 등에 대해 사용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판결이 연이어 나온 것이다. 하지만 국회는 법원 판결에 불복하며 소송을 통한 버티기에 나서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부장 유진현)는 지난 1일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가 국회 사무총장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국회가)입법 및 정책개발비 지출에 대한 증빙서류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하 대표는 작년 6월 국회를 상대로 2016년 6월부터 2017년 5월까지 집행된 입법ㆍ정책개발비에 대한 영수증, 계약서 등 증빙서류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국회 측은 “정보 공개 시 국회의원 업무의 공정한 수행이 현저하게 지장을 받을 것”이라고 거부 이유를 밝혔지만 재판부는 “정책개발비를 받은 개인의 성명, 소속, 직위가 공개됨으로써 예산의 투명한 사용과 공익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설명했다.
앞선 지난해 12월에는 국회 특수활동비의 세부 지출 내역을 공개하라는 항소심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행정7부(부장 윤성원)는 참여연대가 국회를 상대로 제기한 ‘2011~2013년 특수활동비 세부내역 비공개 처분’ 취소 소송에서 “국민의 알 권리를 실현하고 국회 활동의 투명성과 정당성 확보를 위해 특수활동비 공개의 필요성이 크다”며 1심에 이어 다시 참여연대 손을 들어줬다.
현재 법원에는 하 대표가 추가로 소송한 특수활동비ㆍ업무추진비ㆍ예비금 사용 내역과 정책자료집 인쇄ㆍ발송비 내역에 대한 재판도 진행 중이며 다음달 27일 1심 선고가 예정돼 있다.
이 항목들은 국회의 대표적인 ‘깜깜이 예산’으로 꼽힌다. 사용처를 밝히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로 사적 유용 의혹이 수시로 제기돼왔다. 2015년 홍준표 당시 경남도지사가 “원내대표는 국회 대책비(특수활동비)가 나오는데, 활동비 중에 남은 돈은 집에 생활비로 줄 수 있다”고 해 논란이 됐던 특수활동비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예산 규모는 ▲특수활동비 81억원 ▲업무추진비 86억원 ▲예비금 16억원 ▲입법ㆍ정책개발비 86억원 ▲정책자료집 인쇄ㆍ발송비 46억원으로 국회 1년 예산(약 6,000억원) 중 5%(300억원)를 웃돈다.
하지만 국회는 잇따른 패소에도 시간 끌기 식 법적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 특수활동비 지출 내역 공개에 대한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지난달 대법원 상고를 진행했고, 최근 나온 입법 및 정책개발비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검토 중이다.
사실 이 문제는 이미 2004년 10월, 15대 국회 특수활동비, 업무추진비, 예비금 정보를 공개하라는 대법원 판결로 결론이 나와 있는 상태다. 국회가 승소 가능성이 없는 데도 국민 세금으로 소송전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승수 대표는 “과거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까지 4년이 걸렸다”며 “이번에도 소송을 최대한 길게 끌어 20대 국회 임기가 지난 후에나 공개를 하겠다는 전략”이라고 봤다. 앞서 국회 입법조사처마저도 지난 1월 “일정기간 지나면 특수활동비의 내역을 공개해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취지의 ‘특수활동비 개선방안’ 보고서를 발간한 바 있지만, 국회사무처는 쇠귀에 경읽기인 듯 무시로 일관하는 것이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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