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눈물이 많은 편이었어요. 부모님이 갑자기 돌아가실까 봐, 집에 불이 날까 봐, 가족이 뿔뿔이 흩어질까 봐 언제나 걱정했어요. 커서 오빠랑 결혼해 우리 가정을 지켜야겠다고 결심한 적도 있어요(웃음).”
지난달 31일 서울 마포구 월드컵로 교보문고 합정점 배움홀에 선 서현 작가의 말에 객석에 잔잔한 웃음이 퍼졌다. 이날은 제58회 한국출판문화상 북콘서트의 마지막 시간이었다. 어린이ㆍ청소년 부문 수상작인 ‘간질간질’(사계절)은 울보였던 작가가 자신의 어린 시절에 바치는 웃음기 어린 위로다. 주인공 아이가 머리를 긁어 땅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들이 분신으로 변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머털도사나 손오공처럼 분신들에게 각종 임무를 맡겼다면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졌겠지만, ‘간질간질’의 주인공은 분신들과 오로지 즐겁게 노는 데만 집중한다. 집 안에서 시작돼 산으로 들로 이어지는 댄스 파티는, 주인공의 머리가 또다시 간질간질해지면서 온 세상으로 퍼진다.
“주인공과 분신들이 지나가는 곳마다 흥이 전파돼요. 산도 들썩거리고 버스도 흥에 겨워 춤을 추죠. 마지막은 엄마의 진공청소기에 분신들이 빨려 들어가면서 마무리되지만, 흥이 가로막혔다거나 끝났다기 보다는 잠깐 멈춘 거예요. 아이의 마음 속엔 세상과 나눈 즐거움이 남아 있어요.”
서현 작가가 이 이야기를 구상한 것은 2015년경이다. 첫 책인 ‘눈물바다’(2009)와 그 다음 책 ‘커졌다’(2012)에선 슬픔, 위로, 웃음이 어우러졌지만, 이번엔 웃음으로 시작해 웃음으로 끝나는 이야기였다. 이 때문에 작가의 고민도 컸다. “그냥 하하 웃고 끝나는 이야기도 괜찮을까 싶었어요. 사람들 마음에 남는 건 결국 의미 있고 진지한 책이 아닐까, 웃기기만 하는 이야기는 사람들 마음에 오래 남을 수 없는 걸까 하는 고민이 많았어요.”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었던 건 웃음에 대한 작가의 믿음 때문이다. 그는 “웃음이 최고의 위로는 아니지만 제가 추구하는 것, 그리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란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작업 중 혹시라도 방향이 바뀔까 봐 ‘한바탕 놀이 – 흥’이라고 쓴 글에 동그라미까지 쳐서 강조해놓았다. ‘간질간질’로 상을 받는 자리에선 살짝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혼자 앓던 고민에 대답을 들은 격이었다. “아무도 안 우는데 저 혼자 울어서 민망했어요(웃음). 제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헛된 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에 약간 감동했습니다.”
이유 없는 웃음에 박한 사회에서, 작가는 앞으로도 꾸준히 웃음을 만들어갈 계획이다. “그림책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어린이 독자의 묵직한 질문에 작가는 대답했다. “그림책은 작은 세계라고 생각해요. 편하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작고 즐겁고 귀여운 세계요. 앞으로도 사람들의 마음에 오래도록 웃음을 남기는 세계를 만들고 싶어요.”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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