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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석학 칼럼] 한반도의 겨울철 해빙

입력
2018.02.04 10:0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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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쿠베르탱 남작은 “(올림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승리보다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로 쿠베르탱의 발언이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됐다.

현대 올림픽 역사를 통틀어 스포츠와 정치를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스포츠는 오랫동안 세계 무대에서 정치적으로 건설적인 역할을 해왔다. 1971년 일본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한 미국선수가 중국팀 버스를 얻어 타면서 ‘탁구외교’가 시작됐다. 당시 문화혁명의 절정기에 있던 마오쩌둥은 미국 탁구팀을 중국으로 초청, 1972년 닉슨 미국 대통령의 역사적인 중국 방문을 위한 길을 열었다.

일본이 주최한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과 북한은 사상 첫 단일팀을 결성해 여자단체전 우승을 일궜다. 남북한 선수들이 엮어낸 우정은 결승전에서 중국팀을 물리치는 데 결정적 요인이 됐다. 열광한 한국인들은 남북 분단의 현실을 잠시나마 잊었다.

사실, 올림픽은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부분적으로 기여했다. 서울 하계올림픽을 앞둔 1987년, 한국 국민들은 전두환 군부정권이 민주주의 선거를 받아들이도록 밀어붙이는데 성공했다. 전두환이 독재정권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목적으로 올림픽 유치를 고안해 냈다는 점을 감안하면, 87년 사태는 극적인 측면이 있다. 서서히 다가오는 올림픽 경기와 그에 따른 국제적 압박이 없었다면 한국 민주주의가 평화적으로 또는 급속하게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88 서울올림픽 역시 부정적인 면을 드러냈다. 남북단일팀 합의에 이르지 못한 북한은 참가를 거부했다. 북한은 87년 전두환 독재 체제가 무너지자, 민주적 선거를 혼란에 빠뜨리고 다른 나라들이 서울올림픽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위해 한국 민간항공기를 격추시켰다.

결국 서울올림픽은 남북한 간 분열을 심화시켰으며, 1991년 여자탁구 남북단일팀의 짧은 승리의 순간도 그 추세를 뒤집을 수는 없었다. 한국은 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했고, 북한은 소련 해체 이후 고립주의를 강화하면서 핵 확산의 길을 추구했다.

물론 북한의 88 서울올림픽 참가 거부가 전례 없는 일은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올림픽 참가를 거부한 사례는 숱하다. 히틀러 정권이 1936년 베를린올림픽을 주최한 것도 스포츠 정신을 정치적으로 활용한 사례다. 1945년 조지 오웰은 베를린올림픽을 회고하며 올림픽은 ‘총성 없는 전쟁(war minus the shooting)’이라고 갈파했다. 친선과 우정이라는 스포츠 정신은 표어로만 존재할 뿐, 치열한 국가간 경쟁과 올림픽의 정치적 활용이 ‘총성 없는 전쟁’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오웰의 분석은 최근 올림픽에도 적용된다. 예를 들어,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도 스포츠와 민족주의의 연관성이 드러났다. 베이징올림픽은 화려한 아키텍처로 완성된, 잘 조직된 작품이었다. 중국이 다른 어떤 나라보다 많은 금메달을 획득한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국가의 자존심을 높였다. 전세계를 순회하는 올림픽성화 봉송기간 동안 중국의 티베트 통치에 반대하는 시위는 중국 민족주의에 연료를 공급했다. 국가적 자부심은 베이징올림픽을 감독한 정치지도자, 시진핑(당시 부주석)의 주요 관심사였다. 마찬가지로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은 침체돼 있던 러시아 푸틴 정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었다. 폐막식 3일 전,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동부에 군대를 투입했다.

이제 휴전협정 체결 후 65년 동안 공식적인 전쟁 상태로 있는 한반도에서 올림픽이 열린다. 북한이 평창올림픽 참가를 결정하기 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88년 사태의 재연 또는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군사력 행사를 우려했다. 한국과 일본이 공동 주최한 2002년 월드컵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북한은 한국 대표팀의 탁월한 성과로 평가된 토너먼트가 끝날 무렵, 남한과 해전을 일으켰다.

다행스럽게도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 연설에 화답한 문재인 대통령의 사려 깊은 유화적 태도가 한반도에 해빙의 기운을 일으켰다.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결정과 마찬가지로, 한미 군사훈련을 연기함으로써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려는 한국의 노력은 환영 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이후 좋은 소식이 꾸준히 흘러나오고 있다. 남북 두 나라는 평창올림픽 개회식에서 함께 행진하기로 했고, 여성하키 단일팀도 구성했다.

우리는 항상 김정은 정권의 동기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과거 북한의 우호적인 행동은 의미 있는 양보나 평화를 향한 진전을 가져오지 못했다. 남북이 2000년 이후 세 번의 올림픽에서 함께 행진했음에도 긴장이 계속 고조됐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신중함이 더욱 요구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숙명주의에 굴복하려는 충동에 저항하며 북한의 제안을 지지한다.

북한의 핵 위협은 협상 없이는 관리될 수 없다. 이를 위해 서울올림픽 후 30년 만에 열리는 평창올림픽은 핵 협상의 진전을 이끌어내는 최고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평창올림픽이 ‘평화올림픽’이 되길 기원했다. 그의 바람처럼 북한 선수들이 획득한 최종 메달 수에 비해 북한의 존재가 더 기억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비에르 솔라나 전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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