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희망공동체 송영신 대표
“1인 가구는 이제 생애주기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생애주기상 인구의 절반은 홀로 삶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고, 이건 곧 나의 문제가 돼요. 생애주기로서 어쩔 수 없이 닥쳐오는 운명인 거죠. 중년 시기에 미리미리 준비해둬야 합니다.”
노년의 행복한 홀로서기를 위한 조언을 듣기 위해 시니어희망공동체(옛 한국1인가구연합) 대표인 송영신 변호사를 만났다. 1인 가구의 연대감 증진 및 권익보호를 목표로 2013년 창립된 이 시민단체는 1인 가구의 사회적 관계망을 강화하기 위한 소셜팸(사회적 가족 만들기) 운동, 웰다잉ㆍ공공후견지원운동, 장의 봉사 등 활동을 벌이고 있다.
-청년층과 노년층을 중심으로 1인 가구가 급증하고 있는데.
“1인 가구의 개념을 생애주기의 관점에서 좀 더 유연하게 보자. 인간은 태어나서 청소년기까지는 부모, 부모가 없으면 조부모 또는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그러다 성년이 되면 독립의 욕구가 커진다. 학업이나 취업 등 다양한 이유로 독립한 청년들이 1인 가구 급증의 한 원인이다. 이 청년들이 훗날 결혼을 하면 2인 가구, 자식을 낳으면 다인 가구를 구성한다. 그렇게 다인 가구로 살다가 자식을 독립시키면 다시 2인 가구가 된다. 2인 가구로 부부만 사는 노년 가구는 한국사회의 매우 일반적인 형태로 이미 자리잡았다. 그 중 한 명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 나머지 한 명은 필연적으로 1인가구로 삶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다. 이게 한국인들의 보편적 생애주기가 된 것이다. 이렇게 생애주기로 접근하면 전 국민의 절반은 혼자서 삶을 마감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독거노인과 고독사의 문제가 더 이상 남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인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독거노인의 존재나 고독사 문제를 실패한 삶의 귀결로 보는 인식이 강한데.
“불행을 접했을 때 사람들이 보이는 일반적 반응이 ‘나한테 그런 일이 발생하겠어’다. 1인 가구를 전통적인 가족제도에 대한 도전이나 실패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흐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나의 문제로 접근할 수 있고, 풀어나갈 실마리도 마련할 수 있다.”
-같은 1인 가구라도 청년층과 노년층은 양태가 다를 텐데, 어떤 질적 차이가 있나.
“1인 가구를 청년, 중년, 노년의 연령대로 나눠보면, 놀랍게도 나이가 들수록 다시 다인 가구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비율이 높다. 노년층이 청년층보다 더 공동체를 이뤄 사는 삶을 거부하며 ‘나 혼자 살고 싶다’고 답한다. 청년 1인 가구는 혼자 사는 이유가 학업이든 취업이든 미래의 준비과정으로 잠시 혼자 사는 것인 반면 노년은 생애주기상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혼자의 삶을 받아들인다. 전체 인생을 수렴하는 단계로서의 혼자인 것이다. 물론 ‘홀로’의 삶은 어렵다. 하지만 다시 누군가와 함께 살긴 싫다. 지금이 자유로우니까. 이 분들 이야기를 들으며 인간의 자기결정권, 자유의지대로 삶을 사는 것이 인간 존엄성의 전제조건임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행복한 노년을 위해 어떤 ‘홀로서기’의 준비가 필요할까.
“성별에 따라 현재 노년 1인 가구가 직면하는 어려움이 다르다. 가장 어려운 점으로 꼽는 게 남성은 혼자 밥 해먹고 사는 것이다.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것, 아플 때 수발 들어주는 사람이 없는 것을 가장 힘들어한다. 반면 홀로 사는 여성 노인은 경제적 능력이 없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이다. 가부장적 시스템 속에서 가사노동에 대한 경제적 보상을 전혀 받지 못했고, 노동시장에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연금 등 공적이전소득을 전혀 받지 못하는 상태다. 돈은 삶의 혈액과 같은 것이므로, 이런 여성 노인에게 배우자의 부재는 치명적이다. 이처럼 성별에 따라 양태가 다른 어려움에 초점을 맞춰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마음가짐의 측면에서는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까.
“우리 단체 활동 중에 저소득 치매 독거노인들에게 법적 보호자를 만들어주는 공공후견인지원운동이 있다. 저소득에 치매, 독거에 노인이기까지 하니 4중고다. 그런데 한 어르신이 뵐 때마다 너무 큰 감동을 주신다. 기초수급자에 치매까지 앓고 계시지만 늘 맑게 웃는 얼굴로 연신 ‘감사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말씀하신다. 한국사회 전반에 권리의식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의무는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 노년일수록 이런 경향이 강해진다. 우리가 물질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시대에 살면서 감사할 줄 모르는 것 아닌가 싶은 반성이 이 어르신을 보면 늘 든다. 식상하지만 노년일수록 감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삶의 모든 것에 불만과 노여움을 갖게 된다. 더불어 나의 잣대만 옳고 내가 경험한 것만 옳다는 아집을 버려야 한다. 노년일수록 사고의 유연성이 없으면 인간관계가 끊어져 버린다.”
-고독사를 방지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대책은?
“노년층의 심리적 우울감과 소외감을 초래하는 원인이 남녀가 다르다. 남성은 경제력 상실에서 자괴감을 느끼고 존재의 가치를 못 느끼는 반면 여성은 사회적 관계망과 연대가 상실되면 심리적으로 무너진다. 여성들이 훨씬 더 노인복지관에 많이 가고 관계를 형성하려고 애쓰는 것은 생존의 본능이다. 고로 남성과 여성 각각의 니즈에 맞춰서 정책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여성 노인에게는 관계망 형성을 지원하는 게 우선이다. 복지관에서 다른 할머니들과 싸움을 하더라도 그게 더 건강하고 생명력을 유지하는 길이다. 반면 남성 노인은 단순히 낙엽 치우는 것 말고 과거의 노동경험을 살려서 스스로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자리들을 다양하게 개발해 제공할 필요가 있다.”
-그간의 현장활동을 통해 국가정책에 제언할 게 있다면.
“현재 노인정책은 법률, 경제, 사회복지, 의료가 모두 각개전투다. 이걸 융합해 나갈 수 있는 전방위적 접근으로 정책의 기조도 가야 한다. 지난달 서울대에서 ‘고독사를 넘어 유연사회를 꿈꾸며’라는 특강을 했는데, 고독사 방지를 위한 로봇을 개발 중인 공대생이 로봇을 가져와 시연하며 법적 자문을 구하더라. 사회복지부터 AI까지, 파편화된 정책들을 하나로 종합할 수 있는 거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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