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지마, 날아오를 기회가 와…’
최종 선발전서 역전패 이후에
“괜찮나요” 수많은 사람들 위로
‘슬로스타터’ 부츠 벗고 싶지 않아
“방송해설위원으로 준환이 응원”
“괜찮나요?”
그날 이후 만나는 사람들마다 조심스럽게 묻는다. 내가 덤덤하게 “괜찮다”고 해도 잘 믿지 않는 눈치다.
1월 7일 목동 실내빙상장에서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 단 1장의 올림픽 출전권을 놓고 나는 후배 (차)준환이와 겨뤘다. 내가 지난해 9월 네벨혼 트로피에 출전해 종합 5위를 차지하며 한국 몫으로 확보해 온 귀중한 티켓이었다. 난 2차 선발전까지 2위 준환이에게 27점 이상 앞서 있었다. 사람들은 실수만 아니면 내가 올림픽에 갈 거라고 했다. 그러나 결국 ‘실수’가 발목을 잡았다. 프리 연기를 마치고 대기실로 왔다. 잠시 후 준환이가 연기를 펼쳤고 점수를 보지 않고도 감으로 알 수 있었다. 역전 당했다는 걸. 시상식에서 울고 싶지 않았다. 선배답게 준환이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고 싶어 차 오르는 눈물을 꾹꾹 눌러 담았다. 갈라쇼까지는 잘 참았는데 모든 경기를 마치고 텅 빈 링크를 보자 갑자기 울컥해 눈물이 쏟아졌다.
많은 사람들의 위로를 받았다. (김)연아 누나도 ‘주변에서 우리가 가볍게 했던 말들이 너에게 큰 부담이 됐을 것 같다. 나도 올림픽 전에 힘들었다. 고생했다’고 메시지를 보내줬다. 올림픽을 앞둔 중압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누나의 마음이 느껴져 특히 큰 힘이 됐다.
난 네 살 때 처음 스케이트를 탔다. 어머니(오지연 코치. 김연아가 어렸을 때 점프를 가르친 지도자)를 따라 매일 스케이트장에 갔고 어머니에게 배우는 형, 누나들과 자연스럽게 빙판 위에서 어울렸다.
피겨를 그만둘 뻔한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당시 나는 그저 의무감에 피겨를 했던 것 같다. 하루는 어머니가 “그렇게 할 거면 차라리 그만 하라”고 하셨다. 의욕 없이 연습하는 걸 알아보셨던 거다. 그만 두고 나니 처음에는 좋았다. 그러나 하루 이틀뿐이었다. 계속 스케이트가 생각났다. 한 달 만에 어머니에게 “다시 해 보겠다”고 약속했다. 그 이후 부상이나 슬럼프 등 힘든 적이 많았지만 부츠를 벗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꿈에 그리던 평창 무대에 서지 못하게 됐지만 포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앞으로 연기를 할 날은 많다. 비록 선수로 출전하지는 못하지만 방송 해설 위원으로 올림픽을 함께 하게 됐다. 한국 대표로 나가는 준환이 뿐 아니라 세계적인 피겨 스타들의 연기를 직접 볼 생각에 마음이 들뜬다.
얼마 전 가수 윤종신 선생님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다. 노래 제목은 ‘슬로스타터’. 윤종신 선생님이 남자 피겨 선수를 찾다가 내 사연을 듣고 곧바로 연락을 해 오셨다고 한다. 난 진짜 ‘슬로스타터’다. 기술 하나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다. 노랫말 중 이 대목이 유독 내 마음을 울렸다.
‘포기하지마. 아프면 아픈 얘기, 그 모든 순간순간 나만의 이야기야. 멈추려 하지 마. 분명 날아오를 기회가 와 좀 늦더라도’
이준형 피겨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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