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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검은 금요일’… 겹악재 탓 패닉셀까지

입력
2018.02.03 04:4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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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소 비트피넥스 가격조작 의혹

국세청 “양도세 등 부과 검토” 찬물

“선거 때 보자” 글 인기 검색어에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가상화폐의 대장 격인 비트코인 가격이 1천만원을 밑돌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가상화폐의 대장 격인 비트코인 가격이 1천만원을 밑돌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2일은 전 세계 가상화폐 투자자들에게 ‘검은 금요일’(블랙프라이데이)이었다. 가상화폐 가격이 폭락하며 시가 총액이 하룻동안 무려 1,126억달러(약 121조원)나 증발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국내 가격도 심리적인 저지선인 1,000만원은 물론 900만원선도 붕괴됐다. 지난달 6일(2,532만원)과 비교하면 3분의1 수준으로 폭락한 셈이다. 가상화폐를 ‘흙수저의 마지막 탈출구’로 여겨 투자에 나선 20ㆍ30대의 좌절감 또한 깊어지고 있다.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 비트코인 가격은 전날보다 20% 넘게 하락한 893만6,000원을 기록했다. 비트코인은 같은 시간 해외에서도 8,540달러로 내려 앉았다. 다른 가상화폐들도 일제히 하락했다. 이더리움은 지난달 10일 고점 235만원에서 62% 하락한 90만원대에 근접했고 리플은 지난달 4일 4,750원에서 760원 수준으로 84%나 급락했다. 미 경제 매체 CNBC는 이에 따라 전 세계 가상화폐 시가총액이 4,052억달러로 줄었다고 전했다. 24시간 전에 비해 1,126억달러나 줄어든 셈이다.

‘블랙프라이데이’는 각국의 규제에 이어 가상화폐 가격 조작 의혹까지 불거졌기 때문이다. 미국 블룸버그와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는 세계 5위 가상화폐 거래소인 비트피넥스가 미국 달러화와 연동해 가상화폐를 거래할 수 있는 ‘테더코인’을 확보된 달러보다 과다 발행하는 방식으로 비트코인 가격을 부풀린 의혹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일본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체크에서 발생한 역대 최대 규모의 해킹 피해(580억엔ㆍ약 5,700억원)와 같은 달 30일 우리나라의 가상화폐 거래실명제 시행도 영향을 미쳤다. 신흥 경제대국인 인도도 가상화폐 규제 대열에 합류했다. 아룬 제이틀리 인도 재무장관은 1일(현지시간) “불법 재무활동에 가상화폐가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조치를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이미 지난해 가상화폐 거래소를 폐쇄시킨 데 이어 최근 개인 간 거래와 채굴마저 금지했다.

국세청이 가상화폐 거래에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힌 것도 악재였다. 한승희 국세청장은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가상화폐에 양도세 적용이 가능하냐는 질문에 “그 문제를 지금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원칙적으로 가상화폐를 재화(상품)로 본다면 부가세를 매길 수 있고, 자산이라면 양도에 따른 소득세(양도세)를 부과할 수 있다. 정부 입장은 이를 자산으로 보고 양도세를 부과하는 쪽으로 더 기울어 있다. 한 청장은 또 빗썸에 대한 세무조사와 관련, “거래소 수수료 부분은 당연히 법인세 같은 부분으로 파악돼야 한다”며 “어떤 납세자든 탈루혐의에 대해서는 면밀히 살펴볼 것”이라고 답했다. 한편 지난해 이용자 정보 3만여 건을 해킹 당한 사건으로 전날 경찰 압수수색을 받은 빗썸에 대해 신한은행은 이날 실명확인 계좌 발급을 보류하겠다고 밝혔다.

강력한 규제로 가격 하락이 이어지자 ‘바닥이 없다’는 공포감에 매도에 나서는 ‘패닉셀’ 현상까지 나타나며 낙폭은 더 커졌다. 이날 온라인 가상화폐 커뮤니티에선 “어제가 바닥이라고 생각하면 오늘 지하실인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글이 쏟아졌다. 가상화폐 투자사 블록타워캐피탈의 애리 폴 애널리스트는 “각종 악재로 공포심리가 강해지며 시장이 사소한 악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투자정보업체 오안다의 스티븐 이네스 아시아태평양 센터장은 “비트코인 가격은 5,000달러까지 밀릴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비트코인 1천만원 붕괴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가상화폐의 대장 격인 비트코인 가격이 1천만원을 밑돌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비트코인 1천만원 붕괴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가상화폐의 대장 격인 비트코인 가격이 1천만원을 밑돌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후유증도 커지고 있다. 온라인 상에선 가격 급락에 심리적 불안감을 호소하는 사례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스테이터스네트워크토큰에 투자했다는 한 가상화폐 투자자는 “2억원을 투자했는데 5,000만원밖에 남지 않아 밥도 못 먹고 있다”며 “수면제가 없으면 잠도 자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가상화폐 손실로 이혼 위기에 처했다’거나 ‘대학 등록금을 날렸는데 부모님께 말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고 있다’는 하소연도 줄을 잇고 있다. 지난달 30일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된 대학생 A(20)씨도 한 때 가상화폐에 투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부 20ㆍ30대에게 비트코인은 마지막 희망과 같은 의미였는데 그 꿈이 꺾인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임명호 단국대 교수는 “가상화폐 후유증은 도박이나 마약 중독자가 겪게 되는 패턴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며 “내성(위험에 대해 고려하지 않고 투자)과 금단 현상이 나타날 경우 혼자 앓지 말고 가족 등 주위 사람들과 상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상화폐 가격 폭락에 따른 손해를 정부 탓으로 돌리며 울분을 토하는 경우도 없잖다. ‘거래소 폐쇄’ 등 정부의 강경 발언이 나올 때마다 가격이 급락하자 일부 투자자는 분노를 참지 못한 채 컴퓨터 모니터나 방문 등을 파손한 뒤 이를 온라인상에 올리기도 했다. 인터넷 포털 인기 검색어에 ‘선거 때 보자’는 글도 등장했다. 가상화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정부를 선거 때 심판하겠다는 사이버 항의 시위다. A씨의 극단적 선택을 두고도 온라인 상에선 “정부가 죽인 것이나 다름 없다”는 억지 주장까지 나왔다. 구 교수는 “가상화폐 파동을 계기로 ‘젊은 세대=문재인 정부 지지’ 등식이 깨지고 일자리 문제도 해결되지 않으면서 20ㆍ30대가 정치집단으로 거듭나고 있다”며 “투기로만 몰아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미봉책에 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이영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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