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엊그제 현행 헌법 4조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민주적 기본질서'로 바꾸는 개헌안을 당론으로 추진키로 했다가 수시간 만에 취소하는 소동을 벌였다. 민주당은 대변인이 의원총회 결과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생긴 착오라고 해명했지만, 사안의 중요성과 공당의 책임이라는 차원에서 해프닝으로 돌리기엔 찜찜한 구석이 많다. 특히 이 내용은 보름 전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가 작성한 개헌안 시안에 담긴 것으로 드러나 여야가 공방을 벌이는 등 큰 논란을 빚었던 사안인 만큼 착오나 실수라는 말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민주당 대변인은 당초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는 헌법 4조를 '....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으로 수정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자유'라는 단어를 빼 '민주적 기본질서'의 의미를 확장한다는 얘기였다. 그러자 곧바로 "굳이 자유를 배제하는 것은 '사회민주주의'나 '인민민주주의' 형태의 통일도 용인하겠다는 뜻으로 비칠 수 있다"는 지적과 비판이 쏟아졌다. 헌법 역사를 통틀어 국민 합의로 지켜 온 국가정체성을 특정당 의총에서 손바닥 뒤집듯 뒤흔들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민주당은 4시간 만에 4조를 현행대로 유지한다고 정정했다. 발표 내용이 많아 대변인이 착각했다는 것이다. 실제 의총에서 60%를 넘는 의원들이 삭제를 반대했다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자문위 시안이 알려졌을 때 정치권 안팎에서 '졸속' '좌파적 발상' 등의 집중포화를 맞을 정도로 민감한 사안인데도 대변인의 부주의로 의총 결론을 잘못 전달했다는 해명은 설득력이 없다. 민주당 지도부가 대야 협상카드로 강한 주장을 던졌다가 반발을 감당하기 힘들자 슬그머니 거둬들였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민주당은 의총에서 이 사안 외에 '촛불시민혁명' 문구를 삽입하고 경제민주화 조항을 더 강화하고 국가의 투기억제 의무를 명시키로 의견을 모았다. 야당의 비협조로 개헌특위가 속도를 내지 못하니 대통령의 개헌 로드맵을 뒷받침해야 하는 민주당 지도부는 속이 탈 것이다. 그렇다 해도 권력구조 문제 이상으로 많은 논의가 필요한 헌법적 사안을 툭툭 던지듯 몰고가는 태도는 옳지 않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이번 소동에 대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사회주의 체제로 바꾸려는 주사파 정권의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고 공격한 것은 엉뚱하지만, 그런 공세의 여지를 주고 협상을 어렵게 만든 것은 엄연한 사실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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