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자국 정부에 약물 사용 혐의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하게 된 러시아 선수들을 위한 ‘대체 올림픽’을 개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31일(현지시간) 푸틴 대통령의 명령으로 정부가 ‘대체 올림픽’ 행사를 준비 중이라며, 대회 우승자에게는 올림픽 메달리스트에 상응하는 수준의 상금이 지급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러시아 일간 이즈베스티야는 이 주 초 2014년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소치가 행사 개최지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러시아 국적 외의 선수들이 대회에 참석할 수 있을지 여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의 ‘대체 올림픽’ 개최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국가 차원에서 금지약물을 투여한 러시아 국적 선수들에게 내린 제재 조치에 항의하는 의미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은 최근 몇몇 정부 관료들이 “실수”로 금지 약물 투여를 주도한 것은 인정했으나 IOC가 선수 출전 금지 제재를 내린 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에도 미국이 러시아 대선에 영향을 미칠 의도로 도핑 의혹을 제기했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로이터통신은 푸틴의 ‘서구 음모론’이 3월 대선을 앞두고 국가주의 감정을 자극해 투표율과 득표율을 올리려는 포석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날 푸틴 대통령은 제재 대상이 되지 않아 평창 올림픽에 참가하는 러시아 선수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선수들을 (도핑 의혹으로부터) 보호하지 못한 것을 사죄한다”고 밝혔다. “스포츠가 스포츠와 관계 없는 일(정치)에 엮였기에 여건이 더욱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말도 했다. 남성 아이스하키 선수인 파벨 다츠유크와 일리야 코발추크는 푸틴 대통령에게 선수들의 서명과 ‘내 가슴에는 러시아(가 있다)’고 적힌 팀 운동복을 선물했다.
러시아가 국가 단위의 제재를 받은 상황에서 평창 올림픽에 참가하는 러시아 선수 169명은 ‘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OAR)’로 불리게 되며 러시아 국가가 연주돼야 할 시점에는 올림픽 찬가가 연주된다.
현재 러시아는 IOC를 상대로 국제 사법기구를 통한 다툼도 지속하고 있다. 스포츠중재재판소(CAS)는 평창 올림픽 개최를 약 일주일 앞둔 1일 재심을 통해 러시아 선수 28명에 대한 올림픽 참가 영구 제재 조치를 무효화하는 판결을 내렸다. CAS는 도핑 혐의에 대한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 판결로 이들이 박탈된 메달 9개(금 2ㆍ은 6ㆍ동 1)도 되찾게 되면서 러시아는 소치 올림픽 메달 랭킹에서 노르웨이와 캐나다를 제치고 다시 1위로 올라섰다.
이외에 다른 러시아 선수 11명은 도핑 사실 혐의는 인정됐으나 평창 올림픽만 참가할 수 없고 다음 올림픽부터는 참가가 가능하게 됐다.
이 판결에도 불구하고 IOC가 특별히 추가 참가를 승인하지 않겠다고 밝힌 만큼 러시아 출신 참가 선수는 기존 169명에서 늘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판결 대상 선수 대다수는 지난 소치 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한 상태다. 한국 출신으로 러시아 쇼트트랙 종목 국가대표로 뛴 빅토르 안(한국명 안현수)은 이번 판결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판결에 매우 만족한다”며 “우리 선수들의 권리를 위해 계속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IOC는 “체계적 도핑 조작을 고려하지 않은 판결”이라며 반발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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