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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사건엔 늘 ‘꽃뱀 프레임’… 저열한 물타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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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사건엔 늘 ‘꽃뱀 프레임’… 저열한 물타기죠”

입력
2018.02.01 15:35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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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전문’ 별칭 이은의 변호사

본인도 피해 겪은 후 로스쿨 진학

이은의 변호사는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들은 문제제기 후 따돌림, 인사 불이익 같은 2차 피해를 우려한다. 이때 주변의 ‘신중하라’는 조언은 필요하지만 괜한 공포를 조장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생긴 피해라면, 다퉈도 인생을 크게 위태롭게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이은의 변호사는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들은 문제제기 후 따돌림, 인사 불이익 같은 2차 피해를 우려한다. 이때 주변의 ‘신중하라’는 조언은 필요하지만 괜한 공포를 조장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생긴 피해라면, 다퉈도 인생을 크게 위태롭게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지금까지 울컥거린다. 단순히 ‘그 일’을 당해서가 아니라, 그 일 이후 (고통)겪은 8년의 세월 때문에. 그날 이후 조직은 그에게 무엇이었을까 생각하면 마음 아프다.”

서지현 검사의 성폭력 폭로에 대한 소감을 묻자 이은의(45) 변호사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성폭력 소송 전문’이란 별칭이 붙은 이 변호사의 전직은 삼성전기 해외영업 사원. 그 자신이 직장 내 성폭력을 겪은 피해자였다. 31일 서울 서초동 법률사무소에서 만난 이 변호사는 “그날 이후 조직은 더 이상 비전을 찾을 수도, 신뢰하고 기댈 수도 없는 곳이 됐다”면서도 “싸움을 시작할 거면 조직에 있는 게 훨씬 유리하다”고 말했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그는 2005년 부서장의 성희롱을 회사에 알렸고, 장기간 발령 대기, 진급누락 등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 수많은 직장 내 성폭력 사건 중 하나로 묻힐 뻔한 이야기가 바뀌는 건 이후부터다. 그는 삼성에 계속 근무하면서 삼성을 상대로 소송을 벌였고 모두의 예상을 깨고 행정소송과 민사소송에서 승소, 국가인권위로부터 차별시정권고까지 이끌어 냈다. 승소 후 직장을 그만두고 서른여덟 나이에 전남대 로스쿨로 진학, 2014년 변호사가 됐다. 이 변호사는 “제가 그랬던 것처럼 서 검사가 처음부터 대단한 의지만으로 좌천에도 (조직에서) 버텼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면서 “오래 몸담은 첫 직장이고 남성에게 직장이 함부로 그만둘 수 없는 곳이듯, 여성에게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생계 등 현실적인 문제, 남아서 싸워야 유리하다는 판단이 맞물려 내린 결정이었지만, 실제 소송을 하면서 조직에 남는 것이 유리하다는 걸 실감했죠. 모든 증거가 조직에 있고, 누군가 나를 위해 발언해 주려면 제가 그 안에 있어야 합니다. 이해관계를 같이 할 때도 나서주길 꺼리는데 퇴사하면 나서주겠어요?”

이 변호사의 수임 사건 중 7할이 성폭력 소송이다. 직장 내 성폭력이 근절되지 않고, 피해자에게 2차 3차 피해가 가중되는 원인으로 “문제를 조사하는 사람이 가해자보다 낮은 신분, 지위에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TBS라디오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 11월 10일 방송)이라고 지적해 왔다. 가해자로 지목된 안모 국장보다 선배인 조희진 서울동부지검장(56·사법연수원 19기)을 단장에 맡긴 검찰 성추행 조사단구성을 어떻게 평가할까. 이 변호사는 “조사단장 이력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피해자가 조사단에 신뢰를 가질 수 있도록, 피해자가 신뢰하는 인력을 유입하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저라면 특검처럼 법무부 감찰팀, 검찰 인력, 외부인력을 조합할 것 같습니다.” 인터뷰 다음 날인 1일 조 단장은 민간 외부위원들이 참여하는 조사위원회를 만든다고 밝혔다.

이은의 변호사가 31일 서울 서초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이은의 변호사가 31일 서울 서초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모든 증거는 직장에 남아 있어

소송 위해선 퇴사 않는 게 유리

10년 전과 법원 판단 바뀐 게 없어

오히려 성폭력 맞고소가 늘어”

서 검사를 비롯해 직장 성폭력 피해자에게는 ‘평소 행실이 그럴 만했다’, ‘폭로 의도가 불순하다’는 식의 이른바 ‘꽃뱀 프레임’이 붙는다. 10여년 전 직장인 이은의에게도 꽃뱀 프레임이 붙었다. 이 변호사는 “학대, 살인, 절도 사건에서 피해자의 평소 행실을 문제삼거나, 신고 의도를 의심하는 경우는 없다. 성폭력 사건에서만 나타나는 저열한 물타기”라고 꼬집었다. “제가 회사와 싸울 때도 ‘이은의 이상설’이 있었어요. (이 이상설에 대해) 법원과 인권위가 저에게 소명해야 될 이유를 말해 주면 소명하겠다고 대답했고, 성폭력이라는 문제 본질을 유지하면서 다퉜습니다. 법리 다툼뿐 아니라 대중이 성폭력 사건을 대할 때도 성폭력의 사실 여부, 그로 인한 피해자의 불이익을 봐주셔야 합니다.”

최근 미투 운동이 번지며 직장 내 성폭력 폭로가 이어지고 있지만, 이 변호사가 체감한 ‘법의 온도’는 소송 당사자로 나선 10여년 전에 비해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젊은 세대가 성폭력을 인지하는 감수성은 올라갔지만, 법원의 판단은 크게 바뀐 게 없습니다. 오히려 성폭력 고소에 맞고소하는 ‘가해자 시장’이 늘었죠.” 그가 수임한 성폭력 소송 중 가해자의 무고 맞고소, 명예훼손 소송 변호가 3분의 1에 달한다.

이 변호사는 봇물처럼 번지는 직장 내 성폭력 고발에서 주변인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주변인들의 시선과 태도에 따라 문제 해결이 좌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들이 피해자를 지지할 때 세상이 좀 더 나아진다는 것이다. 서지현 검사 폭로에서 “사람들이 임은정 검사의 이름을 반드시 기억해야”하는 이유다. “약자가 강자를 상대로 싸울 때 연대가 필요합니다. 한데 성희롱 때문에 파업한다는 얘기 들어본 적 있나요. 직장 내 성폭력은 대표적인 ‘나 혼자 싸움’이지만, 모두의 문제고 갑을이 부딪칠 때 원칙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보여 주는 전형적인 문제입니다. 누군가 피해자를 지지할 때 피해자는 두 배가 아니라 열 배의 힘을 얻게 됩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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