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검사 ‘어려서 뽑았는데 얼굴이 별로
애인과 뜨거운 밤 보내라’ 등 발언해도
회식 자리 등서 아무도 제지 안 해
두달 간 성희롱 시달리다 검사 꿈 포기
서지현 검사 폄훼 시선에 폭로 나서”
법조계 ‘미투(#Me Tooㆍ나도 당했다) 운동’이 폭발적으로 번질 조짐이다. 서울 서초동 한 여성변호사도 사법연수원 시절 검찰 시보를 하며 상급자로부터 겪은 심각한 성희롱 피해와 권위적인 마초(Macho) 행태를 공개하고 나섰다.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의 검찰 내부 성폭력 폭로 이후 피해 사례 고발이 잇따르는 양상이다.
31일 서울 서초동에 변호사 사무실을 둔 30대 중반의 A(사법연수원 41기) 변호사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사법연수원 시절 검사 시보를 하며 지도 검사로부터 두 달 동안 심한 성희롱과 성차별 발언에 시달렸던 사실을 공개했다. 사법고시를 통과한 사법연수원생들은 연수원 3학기를 마치고 실무 교육으로 법원과 검찰, 변호사업계를 돌며 각각 2개월씩 시보생활을 한다. A 변호사는 “향후 진로로 검사를 생각하고 있어 기대감을 안고 출근했다”며 “첫 만남부터 면전에서 ‘내 방에 시보 고를 때는 무조건 나보다 어린 여자 고른다. 네가 제일 어려서 뽑았는데 얼굴이 이게 뭐냐’고 말했다”고 털어놨다. “여자는 무조건 예쁘고 날씬해야 된다”, “애 낳고 살 안 빠지면 패서라도 빼게 해야 한다”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고 A 변호사는 말했다.
성희롱ㆍ성차별 발언 강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해갔다. 야근을 하던 중 담당 검사는 “이번 달 안에 사건 처리 안 하면 시보 평가를 쓸 때 ‘사생활 문란. 오피스텔에 남자들 들락날락한다는 소문이 있음’이라고 쓰겠다”고 말하며 크게 웃었다는 것이다. A 변호사는 “너무 불쾌했지만 스스로 농담으로 여기는 분위기라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말은 예사로 했다. 지도 검사가 자신의 소파를 가리키며 “주말에 여기서 여자친구랑 했어”라는 등 자신의 성 경험을 시도 때도 없이 자랑 삼아 거리낌없이 얘기하거나, A 변호사 남자친구까지 부른 회식 자리에서는 “뜨거운 밤을 보내라”는 등 심각한 성희롱이 이어졌다. A 변호사는 “더 수치스러운 표현까지 들었지만 차마 입에 담질 못하겠다”고 했다.
A 변호사는 “버티자는 심정으로 두 달을 보냈다. 언제 어떤 말이 쏟아질 지 몰라 항상 전전긍긍하며 긴장 상태로 소화제를 달고 살았다”고 말했다. A 변호사는 시보 생활을 계기로 검찰 지원을 아예 하지 않았다. 문제의 지도 검사는 몇 해 전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려 옷을 벗었다.
당시 성희롱에 대한 검찰 조직원의 무감각과 폐쇄성에 놀랐다는 말도 덧붙였다. 회식자리에서 성희롱 발언을 했을 때도 아무도 이 검사를 제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방 별로 수사가 진행되기 때문에 서로 다른 방끼리는 내부에서 오고 가는 얘기를 알기 어렵다”며 “옆 방 선배 검사에게 성희롱 문제를 털어 놓은 적이 있는데 ‘전혀 몰랐던 얘기’라며 크게 놀라더라”고 말했다. 큰 용기를 낸 누군가의 신고에 의존해야만 피해 사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내부 분위기에 대해 “’개기면 큰일난다’는 조직문화가 형성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서 검사 사건에 대해서도 “터질 일이 터졌다”는 생각이다. A 변호사가 시보생활을 하기 직전인 지난 2011년에도 검찰 조직 내부 성추행 사건이 수 차례 발생했었다. 당시 여성 사법연수원생을 지도검사가, 후배 여검사를 부장검사가, 여성 검찰수사관을 선배 수사관이 잇따라 성추행하는 사건이 발생해 관련자들이 조사를 받고 사표를 제출하는 등 파문이 일었다. A 변호사는 “당시 사건 직후 시보 생활을 했지만 조직 내 경각심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A 변호사가 자신의 사례를 공개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서 검사 의도를 의심하거나 유난스러운 사람으로 보는 일각의 시선 때문이다. “가정이 있는 사람이, 자신의 얼굴과 지난 경력이 모두 발개 벗겨질 각오를 하고 용기 냈어요. 특이한 사람, 특수한 경우에만 생기는 일이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피해자 잘못이 아니에요. 저도 당했습니다”
지난해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미투 운동은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에게 성폭력을 당한 영화배우 애슐리 저드가 피해 사실을 폭로해 불이 붙었다. 유사 피해를 겪은 다른 여배우들과 여성 정치인, 일반 여성들이 이에 전폭적으로 공감하면서 자신의 사례를 앞다퉈 공개했고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적 문화를 규탄하는 사회운동이 시작됐다. 이 운동으로 하비 와인스틴, 케빈 스페이시 등 거물급 인사가 영화계에서 퇴출됐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미투 운동에 동참한 사람들(‘침묵을 깬 사람들’ㆍThe Silence Breakers)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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