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설 마지막 대목서 北 문제 꺼내
정제된 언어 등 북핵 신중한 모습
‘완전 파괴’ 등 유엔 연설과 대조
남북대화까진 지켜보겠다는 의중
美 정가엔 ‘대북 타격’ 기류 확산
北 추가도발땐 결단 내릴 가능성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첫 국정연설에서 북한 정권의 비인도성과 잔학성을 부각시켰으나, 북핵 해법으로 ‘최대 압박’만을 강조하는 정제된 모습을 보였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의 주한 미 대사 내정 철회로 미국의 대북 군사옵션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신중한 행보를 보이면서 여러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집권 2년 차를 맞은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하원 의사당에서 가진 상·하원 합동 첫 국정연설에서 맨 마지막 대목에서야 북한 문제를 언급했다. “어떤 정권도 북한의 잔인한 독재보다 총체적이고 야만적으로 자국 시민을 탄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북한의 무모한 핵무기 추구가 우리의 본토를 곧 위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대 압박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때까지 기존의 압박정책을 이어가겠다는 점을 재확인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지난 경험은 우리에게 안주와 양보는 단지 침략과 도발을 불러들일 뿐이라는 것을 가르쳐줬다”며 “나는 우리를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넣었던 과거 행정부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며 타협 없는 비핵화 원칙도 재차 강조했다. 그는 “미국과 우리의 동맹에 가할 수 있는 핵 위협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북한 정권의 타락한 성격만 봐도 된다”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에 억류됐다가 풀려나자마자 사망한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와 탈북자 지성호 씨의 사례를 거론하면서 북한 정권의 '잔학성'을 비판했다.
이날 연설은 ‘완전 파괴’ 등 거친 대북 발언을 쏟아냈던 지난해 9월 유엔 총회 연설 보다는, 정제된 언어로 북한 인권문제를 비판했던 지난해 11월 한국 방문 당시의 국회 연설과 맥을 같이 했다. 윔비어 가족과 지씨 사연을 소개하는 시간이 더 길 정도로 북핵 문제에 할애된 시간도 짧았다.
이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진행되는 남북 대화를 지켜보겠다는 의중이 강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초 남북 대화가 시작된 후 남북대화 지지 의사를 여러 차례 언급하고 북미 대화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도 드러냈다. 남북 대화에 소극적인 대북 매파 보다 협상에 공을 들이는 렉스 틸러슨 국무 장관에 힘을 싣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차 석좌 낙마가 상징하듯 상황은 매우 유동적이다. 올림픽 이후 남북대화가 여의치 않고 북한이 추가 도발을 감행하면 제한적 대북 타격 방안인 ‘코피(bloody nose)’ 전략이 순식간에 힘을 얻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트럼프 정부 일각의 대북 타격 기류는 워싱턴 씽크탱크 인사들 사이에서도 급속히 퍼져 있는 상태다. 브루킹스연구소의 박정현 한국 석좌는 “미국 정부 내에서 제한적 대북 타격 방안을 실행 가능한 옵션으로 논의하고 있다”며 “단순한 블러핑(엄포용)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피 전략’은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 등이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장 장관은 만류하는 입장이라는 게 월스트리저널(WSJ)이 최근 보도다.
관건은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선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옵션과 대북 대화를 오가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인 점에 비춰 ‘군사 타격’ 카드를 북한을 대화로 끌어내기 위한 압박용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관측이 아직은 우세하다. 하지만 북한이 올림픽 이후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핵 능력을 과시하는 도발에 나선다면, 매파들이 대통령 결단을 끌어낼 가능성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코피 전략’이 엄포용인지, 실행 카드인지는 사실상 북한의 추가 대응에 달렸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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