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론 北 비판 ‘南 언론 길들이기’ 시도
속으론 시설 노후화 등 준비 부족 가능성
마식령스키장 공동훈련과 달리
北 체제 홍보에도 별 도움 안돼
북한이 금강산 합동문화공연을 돌연 취소한 배경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일단 북측이 통지문에서 밝힌 공식적 사유는 남측 언론의 보도 형태다. 북측은 “남측 언론들이 평창 올림픽과 관련 북한이 취하고 있는 진정 어린 조치들을 모독하는 여론을 계속 확산시키는 가운데, 북한 내부의 경축행사(2ㆍ8 건군절 열병식으로 추정)까지 시비해 나선 만큼 합의된 행사를 취소하지 않을 수 없다”고 남한 언론 책임론을 제기했다. 때문에 향후 비판 보도를 완화하기 위해 일종의 ‘언론 길들이기’를 시도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30일 “언론을 ‘초반에 꺾어야 한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상당수 언론이 남북 단일팀 구성 및 한반도기 등을 둘러싼 2030세대의 부정적 반응을 다루자 위기의식을 느껴 부대행사 취소로 경각심을 주고자 했을 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언론을 표면적 이유로 내세우긴 했지만, 실무적인 부분에서 행사 준비에 한계에 부딪혔을 가능성도 있다. 공연장인 금강산문화회관이 10년 가까이 방치돼 있어 시설 등이 노후화했고, 전력공급을 남측에 맡겨야 할 정도로 기반 시설이 미비해 도저히 공연을 강행할 수 없었을 수 있다. 17일 차관급 실무회담 합의 이후 2주 만에 600여명이 참여하는 행사를 치르기에는 빠듯한 일정이 문제가 됐을 가능성도 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미 실무진에서는 합동공연이 쉽지 않은 여건이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통일부 당국자도 “단기간 내 대규모 행사를 여는 것에 북한 나름대로 부담이 있지 않았나 판단한다”고 밝혔다.
북한 입장은 체제 홍보에 도움이 될 마식령스키장 공동훈련과 달리, 남한 정부의 요청으로 성사된 금강산 합동문화공연에 대해선 별다른 애착이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가운데 남측이 공연할 때 사용할 정유 반출 등을 두고 대북제재 위반 논란이 불거지자, 이럴 바엔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는 쪽으로 결론을 냈을 가능성이 크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안보리 제재 결의 위반 등 여러 가지 얘기가 나오는 상황에서 북한이 부담이 컸던 것 같다”고 전했다.
북한이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 방남 기습 중지에 이어 또다시 일방적인 통보로 교류 행사를 중단시키자, 북한이 향후에도 이러한 돌발 행동을 통해 판을 쥐락펴락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그러나 이번 행사 취소가 올림픽 참가 취소와 대표단 파견 철회까지 염두에 둔 것 같지는 않다는 게 외교안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은 신년사의 기본방침인 남북개선을 따라가긴 해야 하는데 내부에서 준비가 녹록하지 않아 합동공연 취소 사태로까지 이르게 된 것 같다”며 “이번 취소로 인한 큰 파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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