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특별점검에서 드러난 공공기관과 공직 유관기관의 인사ㆍ채용 과정은 그야말로 무법천지였다. 전ㆍ현직 간부나 그 지인 자녀를 특혜채용하는 일은 예사였고, 고위간부 지시로 없던 규정까지 새로 만들어 수준 미달자를 억지로 뽑은 사례도 많았다. 심지어 특정인을 뽑으려고, 진행되던 채용절차를 갑자기 멈추거나 다른 후보자를 고의로 탈락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중앙공공기관 93%, 공직유관기관 78%에서 비위가 적발됐을 정도로, 공공기관 채용비리는 ‘일상화된 적폐’였다.
29일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가 공공기관 및 공직 유관단체의 최근 5년간 채용업무를 점검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중앙공공기관 275개 중 257곳에서 2,311건의 채용비리가 적발됐다. 지방공공기관은 824개 중 489곳에서 1,488건이, 공직 유관기관은 256개 중 200곳에서 989건의 채용비리가 포착됐다.
꼼수ㆍ탈법ㆍ개입… 불가능은 없었다
이번에 적발된 공공기관 및 유관기관의 기관장과 인사담당자들은 채용 관련 법령이나 내부 규정, 채용공고 등을 깡그리 무시한 채 미리 내정된 후보자를 뽑기 위해 온갖 탈법을 저질렀다.
자주 등장한 수법은 서류전형이나 추천전형의 합격 배수를 멋대로 조정하는 식이었다. 서울대병원은 서류전형 합격 배수를 임의로 조정해 특정인을 면접에 올린 뒤 면접위원 전원이 고득점을 주는 방법으로 그를 합격시켰다. 수출입은행도 당초 계획과 달리 후보자 추천 배수를 변경해 특정 후보자를 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기관장이나 고위간부가 규정을 어기고 채용과정에 노골적으로 개입한 경우도 있었다. 한국원자력의학원은 첫 인사위원회에서 특정 지원자의 채용이 무산되자 고위간부 지시로 다시 위원회를 열어 기존 불합격자를 억지로 합격시켰다. 한국장애인개발원에서는 고위간부가 인사담당자에게 특정인을 채용하도록 지시해 특혜채용한 것이 드러났고,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는 고위간부 지시로 특정인에게만 단독으로 면접 기회를 주기도 했다.
이밖에도 한국석유관리원은 합격자를 미리 내정해 두고, 사후에 치른 면접전형 점수를 내정 순위에 맞게 끼워 맞추어 특정인을 채용했다. 한국기상산업기술원은 인사규정을 어기고 정년(60세)이 지난 특정인을 뽑기도 했다.
채용사실을 특정인들에게만 알린 채 암암리에 채용을 진행한 경우도 있었다. 워터웨이플러스는 고위간부 지시에 따라 채용공고 및 채용절차 없이 특정인을 뽑았고, 한국건설관리공사도 채용공시를 외부에 알리지 않은 채 비공개 절차를 진행했다.
전직 간부가 부탁해도 ‘일사천리’
이미 진행된 절차를 무시하거나 알려진 공고를 위반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제주 4ㆍ3평화재단은 외국어 능통자를 뽑겠다고 하면서, 서류심사에서 학원수강 확인서만 낸 응시자를 최종 합격시켰다. 제주테크노파크는 당초 면접 합격자가 있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채용절차를 다시 시작, 기존 서류심사 10위였던 응시자를 1위로 만들어 합격시켰다.
공공기관들은 ‘내정자’를 합격시키기 위해 선량한 다른 지원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근로복지공단은 규정상 가점을 줘야 할 후보자에게 가점을 주지 않는 식으로 결과를 조작해, 지역 유력인사 자녀를 채용했다. 재단법인 충북테크노파크는 점수를 더 줘야 할 경력자나 우대 대상자보다 오히려 무경력자에게 더 높은 점수를 줘, 이 무경력자를 최종 선발하기도 했다. 김용진 기재부 2차관은 “이런 행위는 청년들의 꿈과 희망을 꺾고 사회 출발선상에서부터 불평등을 야기하는 중대한 범죄행위”라고 개탄했다.
전직 기관장이나 간부의 채용 민원이 일사천리도 처리된 사실도 확인됐다. 국립합창단에서는 전직 예술감독이 부지휘자에게 특정인을 채용하도록 지시한 사실이 드러났고, 한국선원복지고용센터에서는 전임 이사장 2명이 현직 직원들에게 특정인을 뽑으라고 강요한 사실이 적발됐다. 군인공제회는 전직 임원 자녀를 원래 채용계획에 규정된 학력과 경력에 맞지 않음에도 선발했고,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의 센터장은 전 직장 출신 지원자를 특혜 채용한 의혹을 받고 있다.
세종=이영창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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