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비자금 120억 원이 생긴다면 무엇을 할까? 당장 세계 여행을 떠날까? 아니야 우선 집을 사서 2년마다 천정부지로 오르는 전세금 공포에서 벗어나자. 차라리 아이들에게 집을 하나씩 사줄까? 수입이 없는 애들이니 자금 출처가 문제 되겠지? 현금을 주고 사야겠네. 작은 집이라도 1억 원은 넘을 텐데 그 많은 현금을 어떻게 세지? 은행에서 계수기를 빌려달라고 할까? 120억 원이나 있는데 까짓 거 하나 사지 뭐. 그보다 취업이 제일 고민인 아이들이니 아예 회사를 차릴까? 그러려면 120억 원은 너무 적은가? 다른 뭉칫돈이 140억 원쯤 더 있으면 가능하겠지?
120억 원은 너무 많으니 소박하게 12억 원이라도 생긴다면 무얼 할까? 지옥철에 시달리지 않고, 갑님에게 비굴해질 필요도 없게 은퇴를 하자. 저절로 눈이 떠질 때까지 자고 일어나 아침 겸 점심을 먹어야지. 그 다음엔 종일 보고 싶은 책과 영화를 보는 거야. 이래 놓고 아마도 막장 드라마나 홈쇼핑을 훨씬 더 많이 보겠지? 그러면 어때? 12억 원이나 있으면 홈쇼핑쯤이야 매일 해도 될텐데···
공상은 공짜로 했지만 올해도 12억 원은커녕 120만원도 거저 생길 기미가 없다. 토정비결을 볼 필요도 없이 내 운세는 동서남북 어느 쪽에서도 공돈은 오지 않는 팔자다. 그렇다면 복권을 사야 하나?
복권 하니 2013년 1화가 방영된 후 며칠 전부터 22번째 이야기인 최종화가 방영되고 있는 일본 로또 광고가 떠오른다. 드라마 형식으로 전개된 이 광고의 주인공은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야나기바 부장과 쓰마부키 주임이다. 주임은 로또를 좋아해서 만나는 사람마다 로또를 권하는데 부장은 전혀 관심이 없다. 1화에 나오는 두 사람의 대화를 보자.
주임) 부장님, 로또 세븐 아십니까?
부장) 모른다.
주임) 1등 당첨금이 최고 4억엔이에요.
부장) 관심 없어.
주임) 당첨금이 누적되면 최대 8억엔이라고요.
부장) 이 봐, 자네의 꿈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건가?
주임)(부장과 헤어져 길을 걸으며) 아 정말 멋지다, 눈물 날 뻔했어.
부장의 대답에 주임은 감동하는데, 저 멀리 복권판매소 앞에서 부장이 로또를 사고 있다. 이 CM의 재미는 부하 앞에서 근엄하게 무게 잡는 부장의 숨겨진 모습에 있다. 부장은 자신의 잘못을 태연히 부하의 탓으로 돌리기도 하고, 외국계 자본이 회사를 합병하도록 음모를 꾸민다. 그런 뒤 부사장을 몰아내고 자신이 부사장의 자리에 오른다. 겉으로는 “사랑이라거나 꿈이라거나 우주처럼 돈 말고도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다”고 떠벌리면서 뒤로는 권모술수로 잇속을 챙긴다. 요즘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한때 높았던 분들과 닮았다.
시리즈가 계속되면서 이 광고에는 두 얼굴을 가진 다른 등장인물들이 등장한다. 쓰마부키 주임이 좋아하는 에리카는 “나는 돈에는 흥미 없어. 하지만 만약 돈으로 뭐든 살 수 있다면 사토시군(츠마부키)의 마음을 갖고 싶어”라고 말하더니, 금방 로또를 사주는 부장의 손을 잡고 기뻐한다. 주임의 동료 아라이는 동료를 배신하라는 부장에게 “동료는 돈으로 살 수 없어요”라고 큰소리 치더니, 프로젝트의 성공을 걱정하는 사장에게는 “비즈니스는 운과 기합”이라고 허풍을 떤다. 현실에서라면 이 회사는 벌써 망했을 것이다.
다스 비자금과 국정원 특활비가 연일 뉴스에 오르내린다. 뉴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현금 다발로 오고 간 5천만 원, 1억 원, 120억 원을 얘기한다. 알뜰살뜰한 국민 노릇이 어쩐지 쩨쩨하게 느껴진다. 복권 한 장 사지 않았는데 그 많은 돈이 생겼다니, 전직 대통령이나 다른 높았던 분들에게 공직은 국민에게 봉사하는 자리가 아니라 당첨이 확실한 로또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 로또7_TVCM_제1화_2013_스토리보드)
(일본 로또7_TVCM_제1화~제21화_2013~2017_유튜브링크)
(일본 로또7_TVCM_최종화_2018_유튜브링크)
정이숙 카피라이터ㆍ(주)프랜티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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