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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석학칼럼] ‘경제 포퓰리즘’이 필요할 때도 있다

입력
2018.01.28 13:41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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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스트들은 정치적 국정운영에 대한 규제를 싫어한다. 대중을 대표한다는 그들로서는 권력의 행사 제한이 대중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다. 이는 소수에 대한 다수의 횡포를 허용한다는 면에서 위험한 정치적 접근이다. 권력분립과 사법부 독립, 자유로운 언론이 없는 한 블라디미르 푸틴부터 도널드 트럼프에 이르는 포퓰리스트 독재자는 민주정치를 전제정치로 퇴보시킬 것이다.

제도적 규제에 대한 포퓰리스트의 반감은 경제정책에서도 나타난다. 경제 포퓰리스트들이 최선의 상태라고 여기는 건 독립적 규제기구나 독립적 중앙은행, 또는 글로벌 무역규제 등에 의한 규제가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런데 정치적 포퓰리즘과 달리, 경제 포퓰리즘은 가끔 정당할 때도 있다.

우선 경제정책에서 원론적 규제가 왜 필요한지부터 따져보자. 경제학자들은 대개 그런 규제를 지지한다. 정치적 필요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경제정책은 매우 비효율적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정책은 경제학자들이 ‘시간 비일관성(time-inconsistency)’이라고 말하는 문제에 휘둘릴 때가 많다. 정치적 단기효과에 눈이 멀어 장기적으로 훨씬 더 바람직한 정책을 꺼리는 상황 말이다.

전형적 예가 ‘돈 풀기 정책’이다. 정치인들에게 통화정책 결정권이 있는 경우, 그들은 대개 선거 전에 단기적 경기부양을 노려 통화량을 마구 늘릴 수 있다. 그런 정책은 역효과만 낸다. 경기부양이든 고용효과든 긍정적 효과는 없이 물가만 올려놓을 뿐이다. 이런 부조리를 막기 위해 독립된 중앙은행이 물가안정을 위한 통화정책을 펴도록 해야 한다.

경제 포퓰리즘이 거시경제를 망친 사례는 라틴아메리카에서 흔히 볼 수 있다. 1990년대 들어 제대로 된 경제정책의 원칙이 자리잡기 전까지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지속 불가능한 통화ㆍ재정 정책이 기승을 부렸다. 포퓰리즘 정책은 경제위기를 일으켰고,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큰 고통을 겪었다.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 지역에서는 경제정책의 원칙이 중시됐고, 전문관료들이 재무장관을 맡았다.

또 다른 예는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대우다. 일단 외국기업이 투자를 하면 그 기업은 투자국 정부의 정책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 애초에 외국기업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내놓았던 약속은 쉽게 잊혀진다. 대신 자국기업이나 재정적 이익을 위해 외국기업을 압박하는 정책이 가동된다.

이런 위험을 줄이고, 외국 투자자들에게 투자 유치국 정부의 신뢰를 보강하기 위한 조치로 국제무역 규정에 이른바 ‘투자자ㆍ국가 분쟁해결(ISDS)’ 조항이 부상했다. ISDS 조항을 통해 외국 투자기업은 국제재판소를 통해 투자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통화정책 권한을 중앙은행에 위임하거나 전문관료를 기용함으로써, 또 국제적 규정 등을 통해 경제정책이 정치에 휘둘리는 걸 규제한 사례이다. 그런 규제들은 집권자들이 정치적 단견을 좇다 경제를 망치는 걸 예방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경제에 관한 원론적 규제가 늘 바람직한 건 아니다. 특히 어떤 규제들은 특정 이해관계나, 경제정책에 대한 장악력을 독점하려는 엘리트의 계산에 따라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 경우 권한을 위임 받은 독립적 기구나 글로벌 규정 등은 공익이 아닌 극소수 ‘내부자’의 이해를 위해 작동한다.

오늘날 경제 포퓰리즘의 일부는 최근 수십 년 간 원론을 빙자한 많은 경제정책이 이런 ‘내부자’의 이해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믿음 아래 추진되고 있다. 다국적 기업과 투자자가 점점 더 많은 국제통상 규율에 간여해왔으며, 이런 규율에 의해 자본과 노동 간의 불공정한 분배를 초래하는 국제경제질서가 형성됐다. 상대적으로 자본에 유리한 엄격한 특허규정이나 국제 투자자 관련 재판제도 등이 대표적 사례다.

한편 독립적 중앙은행들은 80ㆍ90년대에 걸쳐 인플레이션을 잡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이 매우 낮아진 최근에는 가격 안정에 대한 집착이 오히려 경제에 디플레이션 효과를 일으켜 고용창출이나 성장정책과 마찰을 빚고 있다.

자유주의를 내세우며 공익과 괴리된 이런 식의 ‘원론적 규제’가 지금 유럽연합(EU)에서 절정에 달해있다. 지금 EU 각국의 경제제도와 규율은 공익과 동떨어진 채 만들어지고 있다. 그리고 경제정책과 공익 사이의 간극이 EU 회원국에서 반(反)유로 포퓰리스트 정파의 대두를 촉진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원론적 규제는 느슨하게 하면서 선거로 집권한 정부에 경제정책의 자율권을 돌려주는 게 바람직할 수 있다. 비상한 때엔 경제정책에도 비상한 실험의 자유가 요구된다. 미국의 뉴딜정책이 역사적으로 그런 사례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개혁을 위해 국내의 보수적 사법부와 금융권, 해외의 금본위제 등에 의해 만들어진 경제 규제를 과감히 제거해야 했다.

정치적 포퓰리즘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막아야 할 해악이다. 그러나 경제 포퓰리즘은 때때로 필요하다. 어찌 보면, 경제 포퓰리즘은 훨씬 더 해로운 정치적 포퓰리즘의 대두를 예방하는 유일한 방안일지도 모른다.

대니 로드릭 하버드대 케네디 공공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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