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층 병실 입원 환자 강모씨 증언
“비상벨 10분 동안 울려대도
환자들 대피 안내 방송 없어”
건물 4ㆍ5층 사이 방화셔터도 열려
소방훈련도 온라인 교육으로 대체
경찰, 인재 무게 두고 수사 나서
‘이번에도 대피방송은 없었다.’
188명의 사상자를 낸 경남 밀양시 가곡동 세종병원 화재 참사는 우리사회에 총체적으로 만연한 안전 불감증을 또다시 드러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일각에선 “세월호의 축소판”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화재 당시 비상벨이 10분 이상 요란하게 울려댔는데도, 비상계단 탈출을 돕는 그 흔한 대피방송은 없었다. 그 사이 닫혀 있어야 할 건물 층간 방화셔터는 활짝 열려 있어 피해를 키웠다.
화재 당시 6층 610호실에 입원해 있었던 강모(79)씨는 27일 “불이 났는데도 대피 안내 방송은 없었다”고 전했다. 강씨는 “당시 화재 비상벨이 울려 불이 났다는 걸 알았고, 엄청나게 비상벨이 울어대길래 간병인에게 무슨 일인지 알아보라고 했는데, 간병인은 병실 문 밖으로 내다보더니 ‘아무일 없다’며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강씨는 또 “비상벨이 10분 넘게 울려대고 있는데도, 오작동이라는 방송도 없는 등 병원 측의 대피 안내 방송은 없었다”며 “비상벨이 울린 지 10분 정도 지났을 때 갑자기 ‘펑펑’ 하는 소리가 나고 순식간에 시커먼 연기가 올라와 암흑천지가 됐다”고 했다. 강씨가 입원 중인 병실 문은 버튼을 눌러야 열리는 자동문이었는데, 정전 때문인지 문도 열리지 않았다. 공포에 떨던 강씨 등 병실 환자 13명은 몇 분 뒤에야 문을 뚫고 병실로 들어온 소방대원들의 도움을 받아 비상계단을 통해 대피했다.
이처럼 스프링클러도 없는 병원 건물에 시커먼 연기가 시시각각 환자들의 생명을 옥죄고 있었지만 병원 건물 방화셔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박재현 밀양소방서 구조대장은 “화재 당시 병원 4층과 5층 사이 방화벽이 열려 있었다”고 말했다. 건물이 증축 등을 거치면서 구조가 복잡한 데도 소방설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유독가스가 빠르게 건물을 뒤덮으면서 짧은 시간에 인명 피해가 컸다는 얘기다.
경찰은 소방안전시설이 제대로 작동했는지와 안전수칙을 지켰는지 등 ‘인재(人災)’에 무게를 두고 수사하고 있다. 세종병원은 3년 전부터 과장급 직원을 소방안전관리자로 둬 자체 소방시설안전점검을 해왔으며, 지금까지 ‘이상 없음’ 판정을 소방서 등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병원 측은 직원들의 위기 관리 능력 향상을 위해 실시하던 소방훈련 등 시뮬레이션도 최근엔 온라인 소방교육으로 대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직원은 “예전엔 소방 대피훈련을 몇 달에 한 번씩 하면서 화재 발생 시 담당 역할을 정해주곤 했는데, 최근엔 인터넷으로 소방교육을 받는 식으로 바뀌었다”며 “나 같은 경우는 인터넷을 못하니까 그냥 말로만 어떻게 한다고 전해 듣고 그랬다”고 말했다. 화재 등 위기상황에 대한 병원 측의 대응 능력에 문제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경찰은 병원 측이 자체 소방시설안전점검은 물론 소방훈련도 형식적으로 실시한 건 아닌지 들여다 보고 있다. 경찰은 또 불꽃이 튀어 화재가 시작된 1층 응급실 내부에서도 전열기구 등을 이용한 부주의가 있었는지도 조사하고 있다.
1층 엘리베이터에서 숨진 채 발견된 2층 입원 환자 6명도 논란거리다. 이들은 화재 직후 급히 대피하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가 순식간에 번진 연기에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화재 시 엘리베이터 통로로 불길과 유독가스가 상승 기류를 타고 건물 위로 올라가기 때문에 피해를 키울 수 있는데도, 환자들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했다는 건 대피 과정에서 병원 관계자들의 적극적인 대피 안내 등이 없었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밀양소방서 관계자는 “환자들이 모여 있는 병원의 경우 면적 규모와 상관 없이 스프링클러 등 필수 소방시설 설치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며 “또 다중이용시설 관계자 등도 평소 기본적인 안전의식을 높여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밀양=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김형준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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