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신과 함께’)이 한국을 넘어 아시아 전역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에서 1,400만 관객 돌파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대만에서는 ‘부산행’(매출액 1,130만 달러)을 제치고 한국영화 역대 최고 흥행 기록(21일 기준 매출액 1,317만 달러)을 세웠다. 한국 개봉 이틀 뒤인 지난달 22일 대만에서 개봉한 ‘신과 함께’는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쥬만지: 새로운 세계’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가볍게 누르고 현재까지 5주 연속 주간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뿐 아니다. 홍콩에서는 지난 11일 전체 53개 극장 중 51개 극장에서 개봉했는데, 홍콩에 선보인 한국영화 중 역대 최대 규모였다. 베트남ㆍ태국(지난달 29일 개봉), 인도네시아(5일), 라오스ㆍ캄보디아ㆍ싱가포르ㆍ호주ㆍ뉴질랜드(11일), 미얀마(12일), 말레이시아(18일)에서도 차례로 개봉했고, 대부분의 국가에서 박스오피스 2~3위에 오르며 파란을 일으켰다. 오는 31일에는 아시아에서 비교적 영화 시장 규모가 큰 필리핀에서 개봉을 앞두고 있어 더욱 고무적이다.
한국영화가 해외 여러 나라에 수출되는 게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신과 함께’도 개봉 이전에 이미 전 세계 103개국에 판매됐다. 하지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전 세계 동시 개봉 전략을 구사하듯 한국 블록버스터가 여러 나라에서 ‘동시’ 또는 ‘동시기’에 극장 개봉해 흥행까지 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이번 성공이 바탕이 돼 앞으로는 이런 사례가 더 많아질 거라는 기대 섞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신과 함께-죄와 벌’ 해외 극장 매출액
※자료: 롯데엔터테인먼트
◆‘부산행’ 개봉 주요 5개국 극장 매출액
※자료: NEW
해외로 뻗어가는 한국영화
‘신과 함께’와 같은 시기 개봉한 ‘1987’도 해외 관객을 부지런히 만나고 있다. 지난 12일 미국 뉴욕, 시카고, 시애틀 등 주요 도시에서 개봉했고, 대만에서도 30여개 극장에서 첫 선을 보였다. 18일 호주, 뉴질랜드에 이어서 다음달 1일엔 싱가포르에서, 3월 8일엔 홍콩에서도 개봉한다. 지난해 여름 개봉한 ‘군함도’는 아시아와 유럽 등 155개국에 팔렸다. 한국 개봉 직후 북미에서 개봉해 15일만에 박스오피스 매출 100만 달러를 달성했고, 동시기 개봉한 홍콩, 싱가포르, 대만, 베트남에서는 한국영화 중 역대 흥행 2위에 오르기도 했다. ‘군함도’의 경우 아시아 국가들이 일제 식민지 역사를 공유하고 있어 반향이 컸고, ‘1987’도 군부독재와 민주주의 투쟁이라는 공통된 역사적 경험을 토대로 국경을 넘어 소통할 수 있었다.
한국영화의 해외 동시 개봉은 ‘부산행’ 이후 본격화되는 추세다. 2016년 여름 국내에서1,150만 관객을 동원한 ‘부산행’은 동시기에 아시아 전역을 휩쓸며 한국영화의 해외 진출에 고속도로를 깔았다. 홍콩과 대만, 말레이시아에서 연달아 개봉해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고, 특히 홍콩에서는 홍콩영화를 제외한 아시아영화 중 역대 최고 흥행을 기록하기도 했다. 정식 개봉을 하지 않은 중국에서는 해적판까지 유통되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부산행’의 인기에 프리퀄(전편에 해당하는 이야기) 애니메이션인 ‘서울역’까지 불법 유출돼 홍역을 치렀다. ‘부산행’은 156개국에 판매돼 현재까지 49개국에서 극장 개봉했는데, 전체 해외 매출액이 5,400만 달러에 이른다. 마케팅비 등을 포함한 총제작비(약 130억원)의 4배 넘는 돈을 해외에서 벌어들인 셈이다.
‘부산행’의 투자배급사 NEW 관계자는 “‘부산행’의 성공으로 해외에서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판권 가격도 올라가고 영화사간 판권 확보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1987’과 ‘군함도’를 투자배급한 CJ엔터테인먼트 관계자도 “기존에 파트너십을 맺고 있던 영화사뿐 아니라 새로운 영화사들에서도 판권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판타지로 구현한 보편적 공감대
이 영화들이 한국에서 흥행했기 때문에 해외에서도 통한 건 아니다. ‘명량’과 ‘광해, 왕이 된 남자’ ‘택시운전사’는 한국에서 1,000만 관객을 거뜬히 넘었지만 해외 극장 개봉 성과는 눈에 띄지 않는다. 한국만의 특수한 역사적ㆍ사회적 경험을 갖고 있어야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반면 ‘신과 함께’와 ‘부산행’은 사전 지식이나 경험 없이도 누구나 보편적으로 즐길 만한 오락적인 소재로 해외 관객과 소통했다. 가족애로 귀결되는 메시지는 정서적 이질감을 없앴다. 무엇보다 판타지 장르라서 개봉 국가의 지역적 특수성에 구애 받지 않았다. 할리우드 영화 못지않게 뛰어난 컴퓨터그래픽(CG) 기술도 관객의 환호를 받은 주요 요인이었다.
좀비 소재를 다룬 ‘부산행’보다는 저승세계를 그린 ‘신과 함께’가 한국색이 짙은 편이다. 하지만 영화가 ‘효’의 정서를 담고 있어 유교문화권인 아시아 각 나라에서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졌다. ‘신과 함께’를 제작한 리얼라이즈픽쳐스의 원동연 대표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판타지라는 새로운 그릇에 담아내 신선하게 다다간 것이 흥행 이유로 보인다”며 “이 영화가 웹툰 원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해외 영화사들 사이에서 웹툰 원작 한국영화를 다시 찾아보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귀띔했다.
영화 관계자들은 해외 시장에서의 한국영화 열풍이 당분간 계속될 거라 전망하고 있다. 당장 올 여름 개봉하는 ‘신과 함께’ 2편도 아시아 각 나라에서 한국과 동시기에 개봉할 예정이다. 벌써부터 2편 개봉에 맞춰 주연배우들과 감독을 자국으로 초청하고 싶다는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원 대표는 “K무비의 ‘브랜드화’ 가능성을 확인한 영화인들 사이에서 내수용을 넘어 아시아권을 바라보고 영화를 기획하려는 시도가 점점 활발해지고 있다”며 “한국영화의 아시아 동시 개봉 사례가 앞으로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업체인 넷플릭스 같은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도 한국영화의 위상을 높이는 데 한몫하고 있다. 31일 개봉하는 ‘염력’은 넷플릭스를 통해 190개국에 선보일 예정이다. ‘강철비’ ‘부산행’ ‘반드시 잡는다’도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 관객을 만나고 있다. 아시아권을 넘어 유럽에서도 한국영화에 대한 호감이 높아지고 있다. ‘아가씨’는 내달 열리는 영국 아카데미영화상에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올랐고, ‘부산행’은 ‘레옹’과 ‘제5원소’ 등을 제작한 글로벌 스튜디오 고몽에서 영어로 리메이크될 예정이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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