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기업 총수(동일인) 지정에서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 한 사람만 승소하면 다른 피해자도 똑같이 구제받을 수 있는 집단소송제는 담합과 허위ㆍ과장 광고, 제조물책임법 위반 행위로도 확대된다.
지철호 공정위 부위원장은 26일 이러한 내용을 골자로 한 ‘2018년 공정위 업무계획’을 발표했다. 지 부위원장은 먼저 “경영 현실과 맞지 않게 지정돼 책임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동일인 사례를 재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매년 5월 자산 5조원 이상 기업을 대기업집단으로 정하고 해당 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또는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고 있다.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본인과 친인척이 해당 그룹과 거래할 때 관련 사항을 공시해야 하고 일감 몰아주기 규제도 받게 된다. 그러나 이 회장과 신 총괄회장에 대해서는 “의식이 없거나 한정후견 판결을 받은 이는 제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일단 공정위는 49개 대기업집단 전체를 대상으로 동일인 지정 적절성을 조사, ▦경영권 승계가 끝났는데도 기존 총수가 동일인이거나 ▦동일인이 의식불명 등에 빠진 경우 등은 대기업집단 지정 시 반영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삼성(이 회장→이재용 부회장)과 롯데(신 총괄회장→신동빈 회장) 동일인이 바뀔 것으로 보인다. 신봉삼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동일인이 변경되면 계열사 범위도 일부 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또 하반기에 직접적인 소비자 피해 가능성이 큰 담합과 허위ㆍ과장 광고, 제조물책임법 위반 행위 등의 분야에 집단소송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가령 자동차 업체가 배출가스 조작으로 연비를 속여(허위ㆍ과장 광고) 소비자에게 피해를 끼친 경우에도 집단소송이 가능해진다. 폭스바겐은 2016년 10월 미국 법원에서 진행된 집단소송에서 약 50만명의 피해자에게 170억 달러(약 18조원)를 지불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다만 최근 ‘아이폰 배터리 게이트’ 사건처럼 제품에 하자가 생긴 경우도 집단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제조물책임법은 제조물의 결함으로 생명ㆍ신체 또는 재산에 손해를 입었을 때 제조사가 손해를 배상하도록 하고 있다.
표시ㆍ광고법의 전속고발권은 폐지된다. 이에 따라 기업의 허위ㆍ과장 광고에 대해 공정위를 거치지 않고 누구나 검찰에 직접 고발을 할 수 있게 된다. 공정위는 유통 3법(가맹법ㆍ대리점법ㆍ대규모유통업법)과 하도급법의 ‘기술유용’ 행위에 대해 전속고발권 폐지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지 부위원장은 “공정거래법의 전속고발권 폐지 문제는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재벌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규제는 강화된다. 현재 대기업집단 내 총수일가 지분이 30% 이상인 상장사 또는 20% 이상인 비상장사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받고 있는데, 앞으로는 상장ㆍ비상장 구분 없이 모두 20% 이상으로 강화된다. 또 일감 몰아주기의 수혜를 입은 자와 실행에 관여한 자는 모두 고발하기로 했다. 실제로 공정위는 최근 총수 일가 회사에 100억원대의 부당 이득을 몰아준 하이트진로에 대해 과징금(107억원)은 물론 박태영 하이트진로 부사장(수혜자)과 경영진 2명(실행 가담자)도 검찰에 고발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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