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서울대공원에서 함께 살던 제주 남방큰돌고래 ‘금등’과 ‘대포’는 고향으로 돌아갔지만(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어 사람들의 애를 태우고 있습니다만) 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제주의 돌고래쇼장인 ‘퍼시픽랜드’에서 살고 있는 큰돌고래 ‘태지’를 기억하시나요.
서울대공원은 지난 해 6월 갈 곳 없어진 태지를 위탁을 자처한 퍼시픽랜드에 맡겼고, 지난 해 11월 20일 위탁기간이 끝나자 1년간 기간을 연장하기로 했는데요. 해양동물보호단체 핫핑크돌핀스는 최근 공사를 마치고 재개장한 퍼시픽랜드에서 기존 돌고래 네 마리와 함께 ‘태지’가 관람객과 사진을 찍는 등 쇼에 동원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핫핑크돌핀스에 따르면 서울시 측과의 계약에 따라 위탁 사육 기간 동안 퍼시픽랜드는 태지를 돌고래쇼에 동원할 수 없음에도 현장 모니터링 결과 태지 역시 다른 개체들과 마찬가지로 하루 네 번 쇼가 끝난 후 관람객들과 사진을 찍는 등 쇼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핫핑크돌핀스 측은 “우울증으로 고통스러워하던 태지가 시민들의 염원과는 정반대로 지금도 퍼시픽랜드 수조에서 조련사의 손짓에 따라 쇼를 하고 냉동생선을 받아먹는 노예와 같은 상황에 놓여있다”고 밝혔습니다.
퍼시픽랜드에는 지난 2005년 제주 바다 비양도 해역에서 불법포획돼 퍼시픽랜드로 옮겨진 남방큰돌고래 ‘비봉이’와 다이지에서 온 큰돌고래 ‘아랑이’, 수족관에서 태어난 ‘똘이’와 ‘바다’, 큰돌고래 ‘태지’가 지내고 있는데요. 퍼시픽랜드는 돌고래들을 수조에 방치한 채 리모델링 공사를 하는 등 비판을 받아왔다는 게 핫핑크돌핀스 측의 설명입니다.
하지만 서울대공원과 퍼시픽랜드 측의 입장을 확인해 보니 이야기는 다소 달랐습니다. 좁은 수조에만 갇힌 채 다른 개체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하는 것보다 다른 개체와 어울리고 운동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겁니다. 퍼시픽랜드 측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태지가 혼자 지내면서 움직이지도 않고 윗 피부가 마르는 등의 문제가 있었고, 또 공사로 인해 다른 개체들과 합사하게 됐다”며 “점프나 빠르게 헤엄치기 등의 운동이 필요에 쇼의 일부에는 참여하고 있지만 사진을 찍거나 조련사와의 수중 쇼는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동물보호활동가들과 전문가들은 운동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자칫 운동을 빌미로 쇼에 동원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제주대-이화여대 돌고래연구팀을 이끌고 있는 김병엽 제주대 교수는 “다른 개체들과 어울려 있다가 외톨이가 되면 우울증이 올 수도 있고, 운동이 필요한 건 맞다”면서도 “다만 쇼에 참여시키기 보단 따로 운동을 시키는 법 등을 강구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합니다. 동물해방물결 장인영 정책국장도 “당초 태지가 퍼시픽랜드로 이동할 때 쇼를 하지 않는 조건인 줄 알았는 데 결국 바뀐 것 아니냐”며 “꼭 쇼에 동원돼야만 운동이 가능한 조건인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사실 위기에 놓인 건 태지뿐만이 아닙니다. 퍼시픽랜드 내 다른 개체들은 여전히 조련사와 쇼를 하고 관람객들과 사진을 찍어야 하고, 다른 수족관 내 살고 있는 돌고래들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핫핑크돌핀스는 남방큰돌고래 비봉이를 제주 바다로 돌려보내고, 서울시와 해양수산부, 환경부, 호반건설, 시민단체가 협력해 바다쉼터를 만들어 태지를 그곳에서 살게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환경운동연합 바다시민위원회도 이날 서울 광화문에서 행사를 열고, 국내 살고 있는 서른 아홉 마리의 돌고래를 고향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며, 제주 마린파크의 추가 돌고래 수입 추진과 부산 아쿠아리움리조트의 수족관 신설 승인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더 이상 국내 수족관에 사는 돌고래들의 숫자가 늘어서는 안될 겁니다. 또 개체의 특성, 방류 지역 등으로 고향으로 돌려 보내지 못한다고 해서 쇼에 동원해도 된다는 건 아닐 겁니다. 돌고래들의 수입을 허락하고 전시해 온 정부와 관련 단체들, 시민단체들이 끝까지 책임을 지고 태지를 비롯한 돌고래들의 처우를 위해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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