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말하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말하는가,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가 역시 매우 중요하다. 언어 능력이 완벽한 모국어 화자들 사이에서의 대화에서도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의도한 의미에 대해서 종종 오해하게 되고, 이것은 후에 크고 작은 분쟁을 낳기도 한다.
의미의 세계는 매우 복잡하다. 우리는 상대방의 말에 의미를 부여할 때, 미시적이며 거시적인 잣대를 모두 동원하며, 말 속에 담긴 단어의 사용에서부터 상황적 적절성, 억양과 표정 등을 모두 고려한 후 의미를 찾아가는데, 이 과정에서 듣는 사람은 말한 사람의 의도와 감정에 대한 평가 역시 내리게 된다. 이를 통해 특정한 말을 나에게 한 저 사람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을까에 대해 종합적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칭찬의 말이라 할지라도 그 말이 평소보다 짧거나 상투적이거나, 혹은 부드럽고 완곡한 억양과 이에 걸맞은 표정과 함께 나타나지 않으면, 듣는 사람은 칭찬을 곧이곧대로 칭찬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숨은 의도가 무엇일지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된다.
언어 사용은 마치 음식이나 옷에 대한 기호(嗜好)와 같이 개개인마다 서로 다른 기호가 있다. 어떤 사람은 말을 좀 더 완곡하게 하는 경향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군더더기 없이 용건만 전달하는 말을 할 때도 있다. 사람마다 말하고 글 쓰는 스타일이 다른 것이다. 그렇지만, 말하기에 있어서, 자신의 스타일만 고집하고 다른 사람이 자신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는 것은 사회적으로 무책임한 행동이다. 나의 말과 언어 행동이 타인에게 원치 않게 부담이 되거나 기분을 상하게 한다면 스타일을 고치며 사회적인 말하기를 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는 있다.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만든 사회적 관습이라고 한다. 물론 요즘과 같은 세계화 시대에 개개인의 언어는 매우 다양하여서 하나의 표본 언어를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영어 하나만 보더라도 이제는 영국이나 미국영어 시대가 아니라 세계영어(World Englishes)시대가 도래하였다. 이와 같은 다양성과 언어의 개인화 속에서도 대화에 참여하는 각각이 서로에 대해 배려하며 이해하고 서로에게 맞추는 조율 과정이 잘 이뤄진다면 오히려 더욱 자유롭고 건설적인 소통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자기 식으로 이야기하고, 자기 식의 해석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아집에 있다. 상대방의 눈높이에서 이야기하지 않고, 상대가 자기의 방식대로 자기가 원하는 해석을 내려주기를 바라며, 자신의 언어를 상대의 언어 눈높이에 맞추지 않는 것이다. 대신 상대방의 언어 사용을 문제시하려고만 한다.
우리 사회가 불통의 고질병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고 불협화음 없이 언어 사용 코드를 맞춰주는 문화가 먼저 형성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무조건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라는 것이 아니다. 좋은 대화 상대자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서로 항상 동의하며 같은 생각을 하고 살아갈 필요는 없다.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서로 다른 생각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생각을 조율하고, 서로에게 최상의 해결책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서로의 언어 코드를 이해하고, 존중하고 맞춰주는 조율의 과정이 필수이다.
나의 말투가 나에게는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불친절한 말투는 아닌지, 나의 대화 스타일이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는 스타일은 아닌 지 우리 모두 생각해 보고 반성해야 한다.
지은 케어 옥스퍼드대 한국학ㆍ언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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