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 공저자 88%가 高2ㆍ3
공저자 등록 세부 기준 부재 탓
수험생ㆍ학부모ㆍ대학원생들 분노
교육부 “대입 활용 확인 땐 입학 취소”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A교수는 2008년 발표한 논문에 고등학생인 아들의 이름을 저자로 실었다. 제1저자를 비롯한 공저자 5명은 모두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소속 대학원생들이고, 유일하게 그의 아들만 고교생이었다. 이 아들은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와 같은 대학원에 다니는 10년 가까이 아버지 논문에 줄줄이 이름을 올렸다. 작년 6월에는 뛰어난 연구 실적으로 아버지인 A교수 추천까지 받으며 학과 내부 상을 받기도 했다.
대학 교수인 부모의 지원으로 대학 연구실에서 실험할 기회를 얻고 논문에 이름까지 올린 미성년 자녀들이 교육당국 조사로 대거 적발됐다. 특히 논문에 저자로 기재된 자녀들 10명 중 9명 가량은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던 고3, 고2 학생이어서 입시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연구부정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게 제기되고 있다. 스펙에마저 ‘금수저 논리’가 작용한다는 의혹이 일부 사실로 확인되자 높은 대학 입시 벽을 넘으려는 수험생들과 논문 실적에 수년 째 몰두하는 대학생들의 공분이 동시에 일고 있다.
교육부는 2007년 2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10년간 발표된 교수 논문에 미성년 자녀가 공저자로 등록된 현황을 조사한 결과 29개 대학에서 82건이 적발됐다고 25일 밝혔다. 이 가운데 중ㆍ고등학교와 대학의 연계 프로그램에 참여한 경우는 16개교 39건, 교육과정과 관계없이 교수가 스스로 추진한 경우는 19개교 43건이었다. 이 중엔 교수 1명이 자녀의 이름을 여러 건의 논문에 저자로 올린 경우도 있었다.
적발된 교수가 소속된 학교는 성균관대가 8건으로 가장 많았고, 연세대 7건, 국민대 6건 등이었다. 서울대(6건)를 비롯해 경북대(5건), 경상대(4건), 부산대(3건), 부경대(3건) 등 국립대학 8곳에서도 26건이 확인됐다.
논문 게재 당시 자녀들은 대체로 고등학생이었다. 고3이 48명(58.5%)으로 가장 많았고, 고2 24명(29.3%), 고1 5명(6.1%)이었다. 중2ㆍ3학년도 각 1명(각 1.2%)이었고 검정고시생도 3명(3.7%)이나 됐다. 교육부는 공저자 자녀가 고3, 고2에 대체로 몰려있는 것으로 볼 때, 교수들이 자녀의 대입 자료에 쓰이도록 연구부정을 저질렀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교육부는 적발된 논문 82건을 전수 조사해 해당 논문이 대입에서 활용된 것으로 확인된 경우 대학에 입학취소 등의 조치를 요구할 계획이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논문에 기여하지 않은 미성년자가 저자로 표시되는 것은 명백한 위법 행위”라며 “검증 결과 문제 소지가 있는 경우 입학 취소 등 원칙대로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교수들의 이 같은 ‘자녀 챙기기’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대학 교수가 고교 학생들의 논문 작성을 돕는 R&E(Research&Education)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는 특정 연구주제와 관련해 해당 분야에 권위 있는 교수가 고교생과 손을 잡고 대학의 최신 연구 장비를 활용해 실험ㆍ연구를 하고 논문을 쓰도록 돕는 형태다. 이번에 적발된 82건 가운데 인문사회분야 2건을 제외한 80건(97.6%)이 이공분야였는데, 이는 R&E 기회가 일반고보다 주로 과학고ㆍ영재고 학생들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라는 게 교육계의 분석이다.
교육당국은 R&E의 문제점을 인식해 2014학년도부터 학교생활기록부에 논문 기재를 금지하고 대입 학생부종합전형(학종)에서도 이를 외부실적에 포함시켜 평가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한국과학기술원(KAIST)나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등 일부 대학은 여전히 특기자전형에서 논문을 지원자격 예시로 두고 있어 대입에서 활용됐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실제 2013년 11건이던 자녀 공저 등록 논문은 규제가 시작된 2014년에도 13건 등록됐고, 2015년 9건, 2016년 5건, 2017년 7건 등 꾸준히 이어졌다.
연구 및 논문 공저자와 관련한 제척 조항이 없는 것도 문제다. 학계에선 논문 작성 시 ‘객관성에 영향을 줄 만한 이해관계가 없도록 하라’는 윤리 기준을 장려하지만, 교수인 부모가 미성년 자녀나 친인척을 참여시키는 데 대한 실질적 규제는 없다. 일부 미성년 자녀가 대학원생인 다른 공저자들보다도 선순위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것도 연구 공로에 대한 뚜렷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엄창섭 대학연구윤리협의회장(고려대 의과대 교수)은 “연구논문의 공저자로 이름을 올리기 위해선 연구의 착상이나 자료 수집, 논문 초안 작성 등에 기여한 실적이 있어야 하지만 세밀한 기준은 없고 공로 순위를 정하는 일도 대체로 연구자들간 논의를 통해 이뤄진다”며 “연구나 논문 작성은 많은 부분을 양심에 맡기도록 하고 있는데, 이를 악용해 별다른 기여가 없는 자녀를 공저자로 등록했다면 엄연한 연구부정”이라고 지적했다.
자녀 논문 공저가 수십건에 달하자 ‘금수저 전형’ ‘깜깜이 전형’이라고 불리는 학종과 특기자전형에 반감을 가진 학부모들 사이에서 분노는 커지고 있다. 고3 학부모 김미영(51)씨는 “보통 학생들은 대학교 실험실을 구경할 기회조차 얻기가 쉽지 않은데, 교수 자녀들은 세계적으로 읽히는 논문에 이름을 실으며 부모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것 아니냐”며 “가족 외에 친구 자녀, 지인 자녀 등을 따지면 그 수는 어마어마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서울 4년제 대학에서 석사 과정 중인 김모(32)씨도 “교수들도 1년에 한 건 남짓밖에 못 쓰는 과학기술논문색인(SCI)급.논문에마저 혈연 논리가 작용하니 연구 동력이 싹 사라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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