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선수 정현이 청년 세대에서 ‘신드롬 급’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한국 사람들이 외국인과 만날 때마다 꼭 한 번은 물어본다는 ‘두유노(Do you know) 시리즈’에 정현이 추가됐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한국을 대표하는 인물로 거론될 만큼 정현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는 의미다.
세계 최정상급 선수에게도 밀리지 않는 ‘탁월한 실력’은 정현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다. 주니어시절부터 그의 무기로 꼽혀온 날카로운 백핸드크로스는 이번 호주오픈에서도 빛났다. 팬들은 약점을 꾸준히 보완해나가는 정현의 노력에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가족과 테니스를 즐겨왔다는 대학생 김재혁(23)씨는 “2년 전 노바크 조코비치와 붙었을 때보다 정현의 서브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며 “불과 몇 년 만에 차원이 다른 선수로 진화했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모든 선수에게 찾아온다는 슬럼프가 정현만 비켜 갔을 리 없다. 남다른 근성으로 역경을 극복해온 정현의 선전에서 청년들은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낀다. 정현은 2016년 부상에 입스(yipsㆍ샷 실패 불안증세)까지 찾아오자 돌연 투어 중단을 선언했다. 초심으로 돌아가 자세교정과 심리상담을 받으며 기본기를 다진 그는 4개월 뒤 코트 복귀에 성공한다. 취업준비생 김영진(28)씨는 “정현이 조코비치에게 설욕했을 때 그가 겪은 고난이 함께 떠올라 더 통쾌했다”고 말했다. 직장인 민찬홍(35)씨는 “약시로 고생한 정현이 신체적 불리함을 딛고 4강에 진출하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났다”면서 “400만 난시 인구 중 한 명으로 너무 자랑스러웠다”고 열광했다.
5번의 타이브레이크에서 한 번도 무너지지 않은 ‘강철멘탈’에 대한 칭찬도 많다. 테니스 경기를 보면 경기가 잘 안 풀릴 때 고성을 지르거나 라켓을 부수는 선수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정현은 위기에서 더 침착하게 경기에 집중하는 강한 정신력을 갖고 있다.
‘요즘 애들답게’ 세련되고 당당한 정현의 태도 역시 2030의 호감도를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대학생 김용하(26)씨는 “과거 스타플레이어들은 인터뷰에서 뻔한 말만 딱딱하게 늘어놓지 않았냐”며 “그에 비해 정현은 표정도 자연스럽고 여유가 넘쳐 보여 더 매력적”이라고 했다. 24일 경기 후 가진 인터뷰에서 “무슨 세리머니를 할까 생각하다 마지막 게임에서 조금 흔들렸다”고 재치 있는 농담을 던졌던 게 대표적인 사례다.
정현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용에도 능숙하다. 한 경기 한 경기 끝날 때마다 인스타그램에 게시물을 올리며 팬들의 응원을 요청한다. 동료 선수들과도 SNS로 소통한다. 직장인 황인석(27)씨는 “조코비치가 정현에게 트윗을 날리고, 정현도 인스타그램에서 화답하는 모습이 멋있었다”며 “손흥민이 메시나 호날두와 SNS로 소통하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영웅이 필요한 팍팍하고 힘든 시기에 정현이 때맞춰 등장했다고 분석한다. 고강섭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청년들이 IMF 시기 박찬호나 박세리에 열광했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정현을 영웅시하는 것 같다”며 “그 만큼 지금이 힘든 시기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우리 삶에 정현의 경기를 투영하는 모습이라는 분석이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김주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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