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4월 29일 오후 3시 일본 지바(千葉) 마쿠하리 메세 센터에서 열린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단체 결승전. 상대는 덩야핑 가오준 등 세계랭킹 1,2위 선수를 앞세워 9연패를 노리는 중국이었다. 사상 처음 구성된 남북한 단일팀과 중국은 세트 스코어 2-2의 팽팽한 접전을 벌였고, 북한의 유순복과 중국의 가오준이 마지막 주자로 나섰다. 일부 국내 일간 신문들은 지방판 마감 시간(오후 6시40분)을 넘긴 상황이라 ‘오후 6시40분 현재 2-2'라는 1면 제목으로 윤전기를 돌리기 시작했다.
▦ 조간 기자들은 마감 시간이 촉박해지자 기사를 ‘이길 경우’와 ‘질 경우’ 두 가지로 작성했다. 남북단일팀은 첫 번째 단식에서 당시 세계 1위 덩야핑을 꺾으며 돌풍을 일으켰던 무명 유순복에게 마지막 기대를 걸었다. 유순복이 예상을 뒤엎고 중국의 가오준에 승리했다. 아리랑이 울려 퍼지고 남북단일팀의 한반도 깃발이 시상대 위로 올라가자 경기장은 순식간에 울음바다가 됐다. 현장에서 취재를 했던 기자에게 그날의 감동은 여전히 생생하다. 하지원과 배두나가 출연했던 영화 ‘코리아’가 이 이야기를 다루었다.
▦ 3시간40여분간의 접전 끝에 수확한 눈물겨운 승리였지만, 짧지 않은 준비기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대회를 두 달여 앞둔 1991년 2월 12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체육회담에서 단일팀 구성이 확정됐다. 세계랭킹을 고려해 여자팀은 남측 현정화, 홍차옥 북측 리분희, 유순복이 뽑혔고, 남자는 남측의 유남규, 김택수 북측 김성희 등이 선발됐다. 훈련기간도 제법 길었다. 단일팀 선수들은 일본 나가노와 나가오카, 지바 등에서 46일간 합숙훈련으로 호흡을 맞췄다. 대규모 기자단도 합숙훈련 때부터 취재를 시작했다.
▦ 27년이 지난 지금 평창동계올림픽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구성과 한반도기 사용 등을 둘러싸고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평화 올림픽을 치르겠다는 정부 희망과는 다른 방향이다. 성급하게 단일팀을 꾸린 탓일 게다. 어째 북한이 올림픽 주인공이 된 듯한 엉뚱한 분위기에 거부감도 적잖다. 그러나 스포츠가 이념 갈등으로 번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스포츠는 대화의 물꼬를 트는 수단에 불과하다. 별스럽게 기대할 것도 없다. 적절히 이용하고 이용당하면서 긴장완화에 도움이 되면 그만이다. 어차피 ‘핵으로 물 베기’ 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