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 국책연구기관에서 정규직 전환 대상인 비정규직 연구원 30여명이 지난해 계약 연장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실상 해고’됐다는 본보의 지적(2018년 1월24일자 1면)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이러한 해명을 내놨습니다. “비정규직의 연구원은 채용 시 근무기간을 설정해 근로계약을 체결하므로 계약기간이 만료돼 고용관계가 종료된 것을 해고 조치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국책연구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해당 기관이 왜 정규직 전환 대상인 비정규직 연구원 수십 명을 내보냈는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과기정통부는 정규직 전환 대상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정규직 전환심의위원회 심의대상에서 제외된 사례가 없는지 검토하겠다고 했으나, 계약 기간이 만료돼 나가게 된 것이니 문제가 없다고 당당하게 밝힌 것입니다. 이런 곳이 과연 비정규직 연구원의 불안과 아픔을 얼마나 잘 헤아릴지 의문입니다.
연구 현장에서는 과기정통부가 인건비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만 내려보내 비정규직 해고 같은 혼란이 일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현재 국책연구기관 인건비는 정부출연금과 외부에서 따 온 수탁과제비용으로 충당하고 있습니다. 외부 수탁과제를 안정적으로 계속 수주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정규직만 대거 늘어날 경우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한 기관들이 정규직 전환에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겁니다.
과기정통부는 2016년 비정규직 연구원의 처우 개선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 차이가 없고, 외부 수탁과제 수주 규모가 줄어들 일이 없기 때문에 인건비 문제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비정규직 연구원의 급여가 정규직 연구원의 80~90%인 곳이 여전히 많습니다. 정규직인 연구책임자가 연구 종료 후 자의적으로 분배할 수 있는 연구수당(성과급)까지 합하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연구원 간의 급여 차이는 더 벌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외부 수탁과제 수주 규모가 감소할 일이 없다”는 과기정통부의 안일한 인식은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인건비 문제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없는 비정규직 연구원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은 그 취지와 상관없이 결국 공염불에 그칠 수도 있습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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