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 ‘염력’ 감독 첫 만화책
소외되고 잊혀진 여인을 소재로
그 여인의 죽음을 파헤치는 아들
정치 벗어나 평범한 사람들 다뤄
6월 민주항쟁을 다룬 영화 ‘1987’이 흥행하자 페이스북에는 ‘명문대 운동권 출신 아재’와 ‘많이 배운 멋진 페미니스트’들의 감상평이 많았다. 대개 ‘그 때도 정의로웠지만, 지금도 그게 정의로운지 여전히 고민하고 있을 정도로 역시나 정의로운 우리들’이라는 쪽이었다.
그래픽노블 ‘얼굴’(세미콜론)은 명문대 운동권 출신 아재, 많이 배운 멋진 페미니스트들의 ‘성찰하는 중산층 얼굴’을 다루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선 형극의 길을 걸어야만 하는, 정영희라는 ‘못생긴 여자’의 얼굴에 대한 이야기다.
‘얼굴’은 못생긴 얼굴 때문에 어릴 적부터 늘 따돌림 당했던, 그 때문에 청계천 피복공장에서 ‘시다’로 온 몸이 닳도록 일해야 했던, 그래서 장님인 도장 파는 기술자와 결혼해야 했던, 그러다 의문의 죽음을 당해야 했던, 그 의문이 30년 뒤에나 풀리는 정영희의 얼굴을 다룬다. 당연히 정영희 스토리 뒤에는 우리 현대사가 옅게 배어 있다. 작가는 영화 ‘부산행’으로 ‘1,000만 감독’ 타이틀을 등에 지고 있는 연상호(40) 감독이다. ‘얼굴’은 그의 첫 만화 작업이다. 영화 ‘염력’ 개봉(31일)을 앞두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를 전화로 만났다.
-‘작가의 말’을 보면 오래 전 구상한 작품 같다.
“2011년이었다.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 개봉하고, 다음 작품 ‘사이비’ 시나리오 작업 마무리하고 다음 작품을 구상했다. ‘아내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남자’라는 설정 아래 여러 관점에서 읽힐 수 있는 우화 같은 작품을 해보고 싶었다. ‘사이비’ 이후 차기작 후보가 ‘서울역’과 ‘얼굴’이었는데, 그간 사회적 이슈를 강렬히 다루는 걸 많이 했으니 장르를 좀 바꿔보자는 의견이 많아서 ‘서울역’으로 낙착됐다. 그 ‘얼굴’이 이제야 나온 셈이다.”
-정영희의 남편과 아들을 통해 요즘 화두인 세대 갈등이 강렬하게 그려진다.
“개발시대를 살았던 아버지 세대들은 경제적으로 좀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보고자 그야말로 초인적 힘을 발휘한 이들이었다. 그렇기에 안고 가야 할, 짊어져야 했었던 죄악들 또한 많이 만들었다. 개발 시대를 거친 그 세대들이 굳이 알지 않으려, 보지 않으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을 직시할 때 아버지와 아들이 화해할 수 있지 않을까.”
-책은 “정영희의 얼굴이 대체 얼마나 못 생겼길래?”라는 궁금증으로 직진한다. 마침내 공개된 사진 속 정영희 얼굴은 진짜 못 생긴 얼굴인가, 평범한 얼굴인가, 예상 밖으로 예쁜 얼굴인가.
“처음 시나리오에도 ‘정영희의 얼굴이었다’라고만 썼다. 시나리오를 본 몇몇 사람들도 ‘그래서 어떤 얼굴이라는 거냐’라고 물었다. 그게 만화 형식을 택한 이유다. 소설로도 써볼까 생각했는데, 소설로 쓰게 되면 문장으로 그걸 설명하고 표현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문장 중심 서사에서 벗어나 이미지 그 자체로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 현대사에서 어쩌면 가장 손쉽게 잊혀지는 얼굴 아닌가 싶었다.
“맞다. 한국 현대사를 얘기할 때 너무 이데올로기 얘기만 하고, 정치 얘기만 한다. 그리고 ‘신분’ 비중이 크다. 거기에서 벗어난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의 얼굴을 드러내고 싶었다.”
-책의 얼개는 정영희의 아들이 엄마 죽음의 비밀을 캐나가는 과정인데 이야기가 너무 직진한다.
“일부러 그랬다. 뭔가 감추면서 실마리를 던져주는 방식으로 스릴 넘치게 이야기를 구성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걸 버렸다. 사안 그 자체를 바라봐주길 바랬다.”
-첫 만화 작업인데, 어땠는가.
“시나리오로 썼다가 만화로 돌렸다. 장면을 컷 단위로 구성하고 책장 넘김을 고려해야 하는 만화 작업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후루야 미노루의 ‘두더쥐’ 같은, 예전부터 좋아했던 만화책 다시 꺼내놓고 고민을 거듭했다. 만화가들을 새삼 존경하게 됐다. 하지만 후련한 감도 있다. ‘돼지의 왕’ 이후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는 일만 해왔다. 만화는 그보다는 소규모니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나 스스로 내게 주는 선물 같았다. 마음 같아서 1, 2년에 한 권씩, 하는 방식으로 내고 싶은데 그게 욕심인 것만 같아서 될 지 모르겠다.”
-출판사도 나름 자본이다.
“하하하. 자유롭게 하도록 해줬다. 많이 팔리면 물론 좋겠지만, 많이 보다는 은근하게 지속적으로 나갔으면 좋겠다. 큰 돈이 들어가는 작업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도 많이 즐겨주셨으면 한다.””
-만화 차기작도 준비하나.
“’송곳’을 그린 최규석과 대학 때부터 친하다. 둘이서 공포물 하나 생각 중이다. 만화 작업이 어려워서 이번에 저는 글만 쓸 생각이다. 하하.”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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