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지금 많이 앉아 있네요.” 18일 오후 철원 동송읍 ‘DMZ철새(두루미)평화타운’에 도착하자 모니터를 확인하던 직원이 철새 관찰소 상황을 알려준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저 좋을 대로 이동하는 새들을 잡아 둘 수도 없고, 경험으로 미뤄 이 기회를 놓치면 또 얼마를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평화타운에서 약 3.5km 떨어진 한탄강변 철새도래지 관찰소로 서둘러 이동했다.
‘꽝’없는 100% 두루미 탐조 여행
관찰소가 위치한 이길리는 철원 민통선 최북단 마을이다. 38선 이북으로 1945년 광복 이후 북한 정권이 장악하고 있다가 수복한 지역이다. 그 후로도 민간인은 들어갈 수 없는 곳으로 남았다가 1957년부터 영농을 위해 제한적으로 출입이 허용됐고, 1979년 민통선 이북지역 취락구조 개선사업으로 주택 68동을 건립해 340명의 주민이 이주했다. 휴전선 바로 너머 북한의 농촌마을처럼 일종의 선전마을이었던 셈이다.
이길리 마을로 들어가려면 지금도 군 검문소를 통과해야 하지만, 철새 관찰소는 마을로 진입하기 전 한탄강변에 있어 누구나 갈 수 있다. 철원군은 지난해 철새를 보러 오는 관람객을 위해 제방에 5채의 탐조용 방을 지었다. 추위를 막아 주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새들의 휴식과 먹이 활동을 방해하지 않기 위한 목적이다. 탐방객이 관찰소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제방에 가림막을 설치한 것도 이 때문이다.
관찰소에 도착하자 입구를 지키던 직원은 방금 한 무리가 날아갔다며 조금만 일찍 오지 그랬냐고 아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별 기대 없이 ‘사진작가의 방’ 문을 열었는데, 눈앞에 펼쳐진 동화 같은 풍경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강줄기 사이에 형성된 작은 섬에 보기 힘들다는 두루미가 빼곡히 앉아 먹이를 먹거나 날개를 퍼덕이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눈대중으로도 정수리가 붉은 단정학과 재두루미를 합해 100마리는 돼 보였다. 이따금씩 3~4마리가 조를 이뤄 고고하게 날개를 펼치고 새로 찾아들기도 하고 떠나기도 한다. 두루미 무리 사이에는 청둥오리도 섞여 있고, 얼지 않은 여울에선 백조 가족이 평화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다. 때로 새끼 고라니가 나타나 새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심술을 부리는 모습도 보인다. 제방 하나를 사이에 두고 펼쳐진, 완전히 새로운 그들만의 세상이다.
물론 항상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두루미는 하루 두 차례 정도 몰려 드는데 정확한 시간은 가늠할 수 없단다. 관찰소 바로 앞에 앉으면 좋겠지만 그 위치는 두루미 맘이다. 다음날 아침 다시 찾았을 때는 관찰소에서 약 200m 상류에 무리 지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맨눈으로는 좀 아쉬운 거리지만, 멋진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모습은 수시로 관찰할 수 있다. 장담컨대 이곳에서 두루미를 보지 못할 확률은 0에 가깝다.
새들의 천국, 철원 민통선 사파리
‘DMZ철새평화타운’에서 하루 2차례(오전 10시, 오후 2시) 운영하는 탐조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좀 더 가까이서 두루미를 볼 수 있다. 약 2시간 동안 민간인 통제구역 21km를 돌아오는 코스로 소수 인원이면 탐방객 차량에 해설사가 동승하고, 예약 인원이 많으면 따로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검문소를 통과할 때의 긴장감은 드넓은 들판 곳곳에서 쉬고 있는 두루미를 보며 사르르 녹는다. 김일남 철원군문화관광해설사는 두루미 가족도 이곳 농민처럼 자기 논이 있다고 말한다. 보통 부부 한 쌍과 새끼 한두 마리로 구성된 일가족이 매일 같은 구역 같은 논에서 먹이 활동을 하거나 쉰다는 뜻이다. 경계심 많은 동물이지만 이곳 환경에 익숙해진 두루미는 사람들과의 거리도 한결 가깝다. 탐방객을 태운 차량이 나타나면 고개를 쳐들고 잠시 경계를 취하는가 싶다가도 천천히 이동하면 아무일 없다는 듯 일상으로 돌아간다. 단 빨리 달리거나 사람이 차에서 내리면 어김없이 날아가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두루미는 세계적으로 3,000여마리가 남은 희귀종이지만 이곳에선 전혀 그렇지 않다. 올해 철원 민통선 일대를 찾아온 두루미는 450마리 정도로 추정된다. 두루미에 가려 관심에서 다소 멀어졌지만 재두루미, 흑두루미, 검은목두루미, 캐나다두루미, 시베리아흰두루미, 쇠재두루미 등도 발견된다. 전 세계 15종의 두루미 중 7종이 철원을 찾는 것이다. 그 중 개체수가 가장 많은 재두루미의 군무도 두루미 못지않게 시선을 잡는다. 약 7만마리에 이르는 쇠기러기 떼가 한탄강과 토교저수지, 철원평야를 수시로 오가며 열을 지어 날아가는 모습도 장관이다.
DMZ철새탐조 프로그램과 철새도래지 관람료는 각각 1만5,000원이다. 이중 1만원은 철원에서 통용되는 상품권으로 돌려주니 실제 요금은 5,000원인 셈이다.
두루미 보러 갔다가...철원 재발견
DMZ철새탐조 프로그램에 참가해 군 검무소를 통과하면 드넓게 펼쳐진 들판에 놀라고, 일직선으로 쭉쭉 뻗은 농로에 감탄한다. 궁예가 태봉(후고구려)의 도읍을 철원으로 옮긴 이유도, 김일성이 철원 땅을 잃고 한탄했다는 후문도 능히 짐작할 만하다.
철원은 서울과 원산을 잇는 경원선 철도의 중간지점으로 광복 직후만 하더라도 서울에 버금갈 정도로 번성했다. 4개 은행과 5개 학교, 34개의 행정기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인구 3만명의 도시는 전쟁으로 철저히 파괴됐다. 탐조 코스에서 볼 수 있는 철원얼음창고와 제2금융조합은 고대 유적의 폐허처럼 보인다. 철원농산물검사소만 유일하게 외관을 유지해 사라진 문명을 증언하고 있다. 바로 옆 군인막사를 개조한 철원근대문화유적센터는 번성했던 철원의 옛 모습을 낡은 필름처럼 보여 준다. 경원선 선로를 배경으로 찍은 ‘신여성’이나 유치원 졸업 사진엔 철원의 전성기 모습이 고스란히 남았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철원역 터에는 ‘통일염원의 침목’만이 부활을 꿈꾸고 있다. 철원역은 한때 서울역보다 많은 83명의 역무원이 근무한 곳이었고, 내금강까지 연결된 금강산전기철도의 시발점이었다. 국내 최초로 전기 철도가 개설된 곳이 바로 철원이었다. 월정리역으로 이동하면 분단의 현실이 더 생생하다.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녹슨 열차 앞에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기약 없는 염원이 적혀 있다. 이곳에서 북한의 최남단 평강역까지는 불과 19km다.
전쟁의 또 다른 상징물 철원 노동당사는 민통선 바깥이어서 특별한 절차 없이도 갈 수 있다. 외벽과 기둥에 패인 총탄과 포탄의 흔적이 남북 간의 치열한 전투를 묵묵히 증명한다. 노동당사 맞은편에는 ‘빛의 사원’이라는 이색 건축물이 설치 미술처럼 서 있다. 23개의 사라져가는 문자로 하얀 기둥을 장식했다. 한국전쟁의 격전지인 철원이 ‘서로의 차이가 존중되는 도시, 평화로운 공존의 도시’로 거듭나기를 기원한다는 설명이 적혀 있다. 무심히 철책을 넘나드는 새들은 이미 팽팽한 긴장을 허물며 평화의 공간을 넓혀가고 있었다.
철원=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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