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수출 세탁기에 관세 폭탄
120만대 미만 20%ㆍ초과 50%
태양광 셀ㆍ모듈에도 최대 30%
세이프가드로 FTA 무력화땐
車ㆍICT 등 다른 수출도 큰 타격
정부 ‘보복관세 검토’ 등 맞불
22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입 세탁기와 태양광 제품에 가장 강력한 통상조치인 ‘긴급수입제한’(세이프가드) 결정을 내리자 우리 통상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는 즉각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결정하는 한편 과거 비슷한 세탁기 통상마찰을 이유로 미국산 제품에 보복관세를 매길 방침을 밝히는 강력 대응에 나섰다.
정부는 23일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주재로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미국의 세이프가드 발동에 유감을 표시한 후, WTO 제소 등 협정에서 보장된 모든 권리를 적극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김 본부장은 회의에서 “미국의 조치는 부당하다”며 “보상 논의를 위해 미국에 양자협의를 즉시 요청하고 적절한 보상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미국 제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양허정지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외국산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 권고안 중 가장 강력한 안을 채택했다. 외국산 수입 세탁기에 저율관세할당(TRQ) 쿼터 기준을 120만대로 설정, 미만 물량과 초과 물량에 각각 최대(첫해 기준) 20%와 50%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당장 미국 수출 세탁기 가격이 20% 인상되는 것이다. 또 한국 등에서 수입한 태양광 제품의 경우 기본소자인 태양광 셀(전지)는 TRQ 기준을 2.5 기가와트(GW)로 정해 이를 초과하면 최대 30%의 관세를 부과하고, 셀을 연결한 태양광 모듈에는 TRQ를 적용하지 않고 관세 30%를 부과하기로 했다.
미국의 이번 세이프가드는 자국법에 근거한 것이다. 지난 1974년 제정된 미 무역법 201조는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관세 인상이나 수입물량 규제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해놓았다. 하지만 국제무역협정인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따르면 세이프가드는 무역상대국과 공정한 무역관행에서 발생한 자국산업 피해 구제 조치인 만큼 적용이 까다롭다. ▦급격한 수입 증가 ▦자국 산업의 심각한 피해 ▦급격한 수입 증가와 심각한 산업피해 간의 인과관계 등 3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발동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미국이 이런 조건들을 전혀 입증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특히 미 ITC조차 한국산 세탁기가 미국 산업피해의 원인이 아니라고 판정했다. 미국 태양광 산업이 어려움에 처한 것도 풍력과 가스 등 다른 에너지원과의 경쟁과 경영실패 등이 원인인데 한국산 태양광에 그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한다. 산업부 관계자는 “세이프가드를 발동하려면 자국산업의 생산과 판매, 고용에 수입제품이 피해를 끼친 객관적 데이터가 필요하다”며 “유럽의 세이프가드 사례와 비교해 트럼프 행정부의 이번 조치는 근거가 빈약하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 무관세로 규정한 국내 생산 세탁기도 세이프가드 조치 대상에 포함해 양국 통상관계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미 정부가 세이프가드로 한미 FTA 무력화를 시도할 경우 자동차와 정보통신기술(ICT) 등 FTA로 양허 조건을 정한 다른 수출 품목에도 부정적 여파가 미칠 우려가 크다.
우리 정부는 WTO에 제소할 경우 승소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김현종 본부장은 이날 “2002년 철강 세이프가드, 2013년 세탁기 반덤핑 관세, 2014년 유정용 강관 반덤핑 관세 등 미국의 과도한 조치에 대해 제소해서 여러 번 승소했다”고 강조했다. 다만 WTO 최종 결정이 나오기까지는 통상 2년 이상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그간 우리 기업들의 피해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편 외국산 세탁기에 대해 세이프가드 청원을 했던 미국 가전업체 월풀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에게 감사한다”며 “미국인 근로자들과 소비자들을 위한 승리”라고 미국의 세이프가드 조치 결정을 환영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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