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대계 80대 할머니가 이탈리아의 종신 상원의원에 임명됐다.
이탈리아 대통령궁은 19일 세르지오 마타렐라 대통령이 홀로코스트 생존자 릴리아나 세그레(87ㆍ사진)를 종신 상원의원으로 지명했다고 발표했다.
밀라노 유대계 가정 출신인 세그레는 13세이던 1944년 1월 아버지, 할아버지ㆍ할머니와 함께 폴란드의 강제 수용소로 끌려갔다. 이듬해 5월 나치의 몰락과 함께 기적적으로 구출됐지만, 가족들은 이미 모두 학살됐다. 수용소로 이송된 총 776명 어린이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은 25명에 불과했다. 세그레는 1990년대 이전에는 참혹한 경험을 발설하지 않았으나, 이후 어린 학생들에게 직접 겪은 참상을 적극적으로 전해왔다.
세그레는 상원의원 임명 소식에 “나는 정치 활동에 적극적이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자 손자들을 둔 할머니”라며 놀라워하면서도 “영광과 큰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 “마타렐라 대통령은 반(反)유대인 인종 법안이 통과된 지 80주년이 되는 올해 나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기억을 존중하고자 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1938년 당시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 파시스트 정권은 유대인에게 경제적으로 불이익을 주고 교육 기회도 박탈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유대인 차별법안을 도입했다.
이탈리아는 전직 국가 원수, 고위 관료, 탁월한 업적을 달성한 과학자, 문화·예술인 등에게 종신 상원의원 지위를 부여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선거를 거치지 않지만 이들은 선출직 상원의원과 동일한 권리를 지닌다. 현재 종신 상원의원으로는 마리오 몬티 전 총리, 조르지오 나폴레타노 전 대통령, 건축가 렌초 피아노, 약리학자 엘레나 카타네오 등이 활동하고 있다.
강윤주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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