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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대화법ㆍ공감능력 키우기… 부모들 “배우니까 달라졌어요”

입력
2018.01.20 09:00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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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6년부터 공적 시스템 본격화

복지부 산하 육아종합지원센터

여가부 산하 건강가정지원센터

양대 축으로 부모역할 지원교육

문제 심각한 가정엔 전문가 상담

#2

경제적 취약계층엔 그마저 사치

학대 가능성 상대적으로 높지만

일당 포기하고 교육 강제 어려워

“복지시설 등 찾아가는 교육 확충

참가비 지급 등 실질 대책 필요”

경기 광명시 소하동 광명시육아종합센터에서 17일 열린 올해 첫 부모교육에서 25명의 젊은 부모들이 4~7세 아동의 발달단계에 맞는 소통법에 대해 배우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경기 광명시 소하동 광명시육아종합센터에서 17일 열린 올해 첫 부모교육에서 25명의 젊은 부모들이 4~7세 아동의 발달단계에 맞는 소통법에 대해 배우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아이를 키울 때 가장 중요한 건 엄마, 아빠의 행복감이에요. 그 행복감이 고스란히 아이에게 흘러가거든요. 여기 오신 분들은 그래도 노력하는 부모님들이세요. 부모 역할, 어렵습니까, 쉽습니까?”

17일 오전 10시 광명시 육아종합센터 3층 다빛교육실. 4~7세 자녀들을 위한 소통법과 리더십 교육을 듣기 위해 모인 25명의 젊은 부모들이 강사인 송금자 신구대 유아교육과 겸임교수의 질문에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너무 어려워요!” 육아의 고민과 고충으로 분투하는 스물네 명의 엄마와 한 명의 아빠에게 송 교수가 묻는다. “우리는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은 걸까요? ‘부모는 ○○○이다’의 빈칸을 먼저 채워봅시다.”

다양한 답이 쏟아졌다. “부모는 거울이다”, “울타리다”, “언제나 내 편이다”, “자화상이다”…. 한 엄마가 “사람이다”라고 답하자 처음엔 모두가 “사랑이다”로 잘못 알아들었다. “아니 사랑 말고 사람이요.” 이내 웃음이 터진다. “그렇죠. 부모는 사람이죠. 때로는 실수하고 때로는 지치지만, 우리는 애쓰고 있으니까요.” 송 교수는 ‘사람인 부모들’에게 ▦아이의 발달단계에 맞게 말하는 법 ▦긍정의 언어로 내면을 세팅하는 법 ▦추락할 때 속도감을 잘 견뎌내고 회복할 수 있도록 자존감을 키우는 법 ▦타인의 감정을 알아채고 이해하는 공감의 능력을 키워주는 법 등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신림동 고시촌의 명강의 현장처럼 분위기는 후끈했다.

부모교육, 어디 가면 듣나요?

잔혹한 아동학대 사건이 사회적 이슈가 될 때마다 그 대안으로 항상 거론되는 게 부모교육 강화다. 대가족 중심의 마을공동체 생활을 영위했던 농경사회가 더 이상 아니다. 숙모가 아기 낳아 수유하고, 이모가 기저귀 가는 걸 어깨너머로 들여다보며 자연스럽게 육아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던 시대는 끝났다. 인간의 초기 단계가 어떠한지, 연약한 생명체로서 아기가 어떤 돌봄을 필요로 하는지 어디서도 듣고 배운 적이 없다. 떼쓰고 고집부리며 부모를 힘들게 하는 게 아이의 발달단계상 자연스러운 자아의 확립과정임을 이해하지 못한다. 일명 ‘독박육아(혼자만 하는 육아)’가 불가피한 핵가족 제도 안에서 알아서 육아서를 찾아 읽고 맘카페의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며 독학하지 않으면 아이를 제대로 키우기 어렵다.

아이는 성장 단계별로 매번 새로운 과제를 제시하고, 부모는 매번 새롭게 그 과제에 대응해야 한다. 아이와의 관계에 문제가 없는 가정은 별로 없다. 하지만 그동안은 각종 육아서나 회당 수십 만원에 달하는 전문가 상담치료 말고는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육아의 기술을 배우고 문제를 해결하려면 민간시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니 경제적 취약계층은 애초에 논의 구조에서 배제된다. 너무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되고, 민간시장을 활용할 수 없는 경제적 빈곤 상태에 있으며, 육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원가정 등 사회적 연결망마저 단절돼 있다면 아동학대는 너무 손쉽게 빠질 수 있는 수렁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모교육의 공적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깔리기 시작한 건 아동학대 사건이 뜨거운 사회적 이슈가 됐던 2016년 무렵부터다. 보건복지부 산하 육아종합지원센터와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건강가정진흥원이 양대 축을 이루며 부모교육 인프라를 확충하고 있다. 0~7세 미취학 아동의 보육을 지원하는 육아종합지원센터는 중앙 센터 1곳, 전국 시도 센터 18곳, 시군구 센터 81곳으로 총 100곳에 설립돼 있다. 서울은 25개 자치구 모두에 한 곳씩 지역센터가 있을 정도로 기본적 인프라는 갖춰져 있다.

육아종합ㆍ건강가정지원센터를 활용하라

전국의 모든 육아종합지원센터는 보건복지부 연구용역으로 2015년 개발한 전국 공통 부모교육 커리큘럼인 ‘클로버 부모교육’과 자녀권리존중 부모교육, 아동학대 예방 부모교육, 포괄적 양육정보 안내 부모교육 등을 상시적으로 제공한다. 이에 더해 센터가 위치한 지역별 특성에 맞는 자체 부모교육도 제공하는데, 주로 건강ㆍ영양ㆍ안전, 양육, 부모역할 등의 주제를 다룬다. 센터마다 운영 프로그램과 실적의 편차는 크다. 부모교육 동영상 몇 편 업로드 해 놓고 ‘조회수 25’로 그친 곳도 있지만, 광명시육아종합지원센터처럼 지난해 총 120회가 넘는 부모교육을 실시하는 등 활동이 활발한 곳도 있다. 센터 홈페이지를 보고 사전 신청하면 무료로 수강할 수 있다.

심각한 양육문제를 겪는 부모들을 대상으로 최대 3회의 전문가 개별상담을 진행하는 아이사랑플래너 사업은 2015년 1,509명, 2016년 4,368명이 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기금이 끊긴 2017년도에는 센터 자체예산으로 사업을 진행해 1,790명으로 이용자가 줄었다. 상담내용은 양육방법에 대한 고민이 가장 많았고, 영유아 발달 및 문제행동, 심리관련, 가족관계 어려움이 그 뒤를 이었다.

아동기부터 노년기까지, 일ㆍ가정 양립부터 다문화가정까지 가족기능 강화를 정책목표로 삼는 여가부 산하 한국가정진흥원은 전국 151곳에 건강가정지원센터를 설치, 부모역할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미성년 자녀를 양육하며 문제를 겪는 가정으로 전문상담사가 직접 찾아가 20~25회의 상담과 교육을 제공하는 가족행복드림사업이 대표적이다. 영유아기나 학령기 자녀가 있는 3~5개 가정이 품앗이를 이뤄 신청하면 전문가로부터 10회에 걸쳐 부모역할 및 자녀양육 기술, 심리검사 및 상담 등을 받을 수 있는 어깨동무 부모교실도 있다. 비슷한 관심사의 가정들끼리 모여 신청한 후 센터에 나가 교육을 받는 식으로 진행된다.

취약계층에겐 부모교육 참여수당을

부모교육에 대한 높은 수요는 이들 프로그램의 이용실적에서 확인된다. 육아종합지원센터의 공통 부모교육은 2016년 총 5,804회 실시돼 12만2,278명이 이용했다. 2017년에는 총 6,925회 제공에 13만5,619명이 참여,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취약한 부모교육 토대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급증하는 아동학대 사건을 효과적으로 예방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수치다. 아동학대의 실질적이고도 근원적인 예방책은 부모교육밖에 없지만, 교육의 가시적 효과는 금세 나타나지 않는다. 정책순위에서 밀리기 일쑤다.

복지부는 지난달 말 보육과 양육에 대한 사회적 책임 강화를 위한 ‘제3차 중장기보육 기본계획(2018~2022)’을 발표하면서 부모역량 강화를 정책 목표의 하나로 내세웠다. 보육료와 양육수당 신청시 자녀양육 및 부모교육에 대한 정보 제공 안내를 강화하고, 교육 커리큘럼도 체계적으로 제공할 계획이다. 현재는 부모교육 동영상 한 편을 의무 시청하지 않으면 수당 신청서 작성 단계로 나아갈 수 없게 막아놓은 수준이다. 복지부는 또 2022년까지 거점형ㆍ이동형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시군구 단위에서 육아 지원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육아종합지원센터도 확대, 설치키로 했다. 부모교육 등 부모역량 강화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과감하게 예산을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2022년까지 30만명에게 부모교육을 실시하는 게 목표다. 여성가족부도 지난해 부모교육의 공적 제공 확대를 위해 주제별로 특화된 부모교육 전문 강사 200명을 육성, 객관적 평가 및 인증 시스템을 가동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취약계층과의 접점이다. “부모교육을 받으러 오는 사람에게는 부모교육이 필요 없다.” 현장 활동가와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다. 부모교육을 받을 자발적 의지가 있는 부모가 아동학대를 저지를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매우 낮기 때문이다. 찾아가는 부모교육에 대한 필요성이 그래서 제기된다.

송금자 신구대 유아교육과 겸임교수는 “정말로 부모교육이 절실한 건 소외계층 부모들”이라며 “현재도 직장이나 어린이집, 미혼모 쉼터 등으로 찾아가는 부모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보다 다각도로 이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송금자 신구대 유아교육과 겸임교수는 “정말로 부모교육이 절실한 건 소외계층 부모들”이라며 “현재도 직장이나 어린이집, 미혼모 쉼터 등으로 찾아가는 부모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보다 다각도로 이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정부 공통 부모교육 프로그램인 클로버 부모교육 연구진이었던 송금자 교수는 “소외계층 부모들이 육아종합지원센터까지 찾아와서 부모교육을 받을 가능성은 사실 매우 낮다”며 “현장 전문가들에게서는 끊임없이 소외계층에게 더 많이 부모교육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피드백이 오고 있다”고 말했다. 찾아가는 부모교육이 없지는 않다. 참석동기가 많지 않은 이들 부모와 연결되기 위해 전국 센터의 강사들이 어린이집과 유치원으로 찾아가는 게 가장 흔하다. 미혼모 쉼터나 산후조리원, 교회나 성당 같은 종교시설로도 찾아간다. 저변화를 위한 노력들이다.

부모교육 의무화도 거론된다. 인성교육과 성교육, 직업체험을 의무화한 것처럼 공교육 과정 안에 임신과 출산, 성장 및 발달단계에 대한 교육을 포함시키자는 것이다. 수능시험이 끝난 후 성인기를 준비하는 시기가 예비 부모교육의 적기로 꼽힌다. 몇 회 이상의 부모교육을 이수하지 않으면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없도록 보육료와 아동수당, 양육수당, 바우처 등 각종 지원정책에 연동시키는 방법도 현장 전문가들이 꾸준히 제안해온 방식이다.

당장의 생계가 걱정인 취약계층에게 부모교육은 사실 사치다. 하루 일당을 포기하고 부모교육을 받으라고 강제하기는 어렵다. 경미화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홍보협력팀장은 “부모교육의 효과는 분명하다. 다만 받기가 어려울 뿐이다. 취약계층에게는 참여비 등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생계의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해 줘야 실질적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대부모가 처음부터 괴물인 건 아니에요. 준비 안 된 부모들이 몰라서 저지르는 학대가 많고, 교육을 받으면 많이들 바뀝니다. 어떻게 가까이서 교육할 것이냐가 중요해요. 가장 편하게 갈 수 있는 읍면동 주민자치센터에서 상시로 교육이 제공돼야 하고, 생계비라는 기회비용을 치러야 하는 분들에게는 보완 대책이 마련돼야 해요.”

특히 이 같은 대책은 아빠들의 교육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학대가정이든 일반가정이든 부모교육을 받으러 나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엄마다. 아동학대를 가정 내 양육이라는 사생활의 문제로 바라봐 공적 개입을 꺼리는 것도 아빠들에게서 보다 흔하다.

부모교육은 마인드 교육이다. 명강의 한두 번 듣는다고 변화하지 않는다. 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상시적 프로그램들이 필요하다. 송 교수는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변화하는 게 부모교육의 효과”라며 “단기적ㆍ가시적 효과를 보기 어렵고 비용은 많이 들지만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전남아동보호전문기관의 구미희 관장도 “아동학대는 개인의 정서적인 문제로부터 기인하기 때문에 해결이 쉽지는 않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 내면의 상처, 안정감의 부재를 공적 기관이 심리치료와 교육을 통해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 “아동학대 가해자를 나쁜 사람, 범죄자로만 취급만 할 게 아니라 이들이 부모와 애착을 형성하지 못하고, 좋은 부모의 모델을 학습하지 못한 것에 공감하는 게 필요해요. 이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 정서적 불안 해소를 도와줄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과 분위기가 조성돼야 합니다. 이게 병행돼야만 근본적 해결이 가능해요. 부모가 따뜻하게 아이를 품어주고, 사랑해주는 것이 뭔지 모르고 부모가 된 사람들 아닙니까. 그 애착손상이 결국 자녀에게 대물림 됩니다. 그렇게 아동학대라는 악순환이 계속되게 더 이상은 놔둘 수 없지 않나요.”

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오희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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