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MB)은 재임시 기자회견다운 회견을 한 적이 별로 없다. 신년 회견은 신년 연설로 대체했고, 격주 라디오 연설을 임기 중 109회나 했다. MB는 해외순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기내에서 라디오연설을 녹음할 만큼 일방적 소통 방식을 선호했다. 오죽하면 KBS PD들이 “KBS라디오는 청와대 구내방송이 아니다”는 성명을 냈을까. MB는 상대와 교감하는 상호성보다 자기 생각을 주입하려는 일방성이 도드라졌다.
▦ 그의 일방성은 개발시대 성공신화에 터잡고 있다. 수평보다 수직, 개인보다 우리, 가족보다 국가가 강조되던 시대를 움직인 핵심 체계는 지시와 복종이었다. MB는 그 틀 안에서 치밀함보다 저돌성으로 성공했다. MB가 자신을 실용주의자라 칭한 것은 그 시대를 관통하며 체득한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의식이 치환된 결과다. 그런 MB가 고도의 공공성을 발휘해야 하는 국정을 그 시절 기업 운영하듯 하고, 공직에 사적 이익에 눈먼 이들을 앉힌 결과는 참혹했다.
▦ 돌아보면 MB 시절만큼 권력형 비리가 심각했던 적도 없다. 자문그룹 ‘6인회’와 대선 경선캠프 ‘안국포럼’ 출신 고위직 인사들, 이상득 전 의원 등 친인척, 대통령직인수위ㆍ서울시 출신 등 권력 실세 수십 명이 인사청탁, 세무조사 무마, 저축은행 퇴출 저지, 개발사업 수주 등 온갖 명목으로 돈을 받아 법정에 섰다. MB는 왜 이를 막지 못했을까. 답은 하나, 그 스스로가 결코 떳떳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대선 전부터 MB는 BBK 의혹에 휩싸였다. 측근들 중에도 ‘주군’의 결백 주장이 맞는 건지 헷갈려 하는 사람이 꽤 있었다. 임기 중에는 내곡동 사저 매입 의혹에 직접 휩싸였다. 민간인 불법 사찰, 국정원 댓글 공작이 자행됐고 4대강ㆍ자원외교ㆍ방위사업ㆍ제2롯데월드 의혹으로 나라가 들끓었다. 불안해진 측근들은 제 몫 챙기기에 바빴다. 그럼에도 MB는 “우리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2011년 9월)이라는, 현실과 괴리된 발언으로 모두를 경악하게 했다. 17일 MB스러운 장면이 다시 연출됐다. 달랑 기자 4명만 앉혀놓고 현 정권을 겁박하는 성명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그리곤 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에 대해선 입을 닫았다. MB가 위기를 모면할 패다운 패를 쥐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시대착오적 정치보복 프레임 제기로 자신의 부족한 현실 감각만 드러낸 것은 패착이다. 정말 MB스럽다.
황상진 논설실장 apri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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