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이달 초 남북관계 개선을 이용해 미국을 북미대화로 끌어내야 한다고 당ㆍ정 간부들에게 지시했다는 일본 언론 보도가 나왔다. 핵무장을 유지하고 한미동맹에 균열을 내면서 한국 측을 경계하는 북한의 남북대화 전략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아사히(朝日)신문은 19일 ‘북한 노동당 간부 출신 탈북자’를 인용한 서울발 보도에서 이 같은 내용의 북한 내부용 강연자료를 소개했다. 자료에 따르면 북한 정권은 지난 9일부터 시작된 남북회담에 대해 “환상을 품지 마라”고 못 박았다. 김대중ㆍ노무현 정권 때의 햇볕정책에 대해 “우리를 무너뜨릴 목적으로, 햇볕으로 우리의 옷을 벗기려 했다”고 규정했다. 문재인 정권에 대해서도 “본질은 흡수통일이다. 미국과 연합군사훈련을 실시해 우리의 핵을 없애려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치ㆍ군사적 긴장을 해소하지 않는 한 어떠한 대화도 백해무익이다”는 언급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미국을 끌어내기 위해 남한을 이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화로 주도권을 쥐면 한국과 미국 사이에 쐐기를 박을 수 있다”면서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중지를 끊임없이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남한의 진보(혁신)계는 우리들의 노선에 동조하기 때문에 기세가 오를 것”이라고 했다. 한국 내 남남갈등이라고 불리는 진보ㆍ보수계의 대립을 불러일으킬 의도를 밝힌 것으로 아사히는 분석했다
남북협력을 통해 기대되는 경제지원에 대한 경계감도 드러냈다. “교류협력으로 함정에 빠지면 안 된다. 남한은 교류를 통해 우리들을 변화시키려고 한다”고 주의를 환기했다.
아사히 신문은 이들 자료를 통해 이뤄진 강연회는 당 선전선동부가 주최한다고 설명했다. 북한 노동당 간부들을 교육하고 당이 그리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수시로 실시된다는 얘기다.
남북 회담에서 그간의 관계악화 원인이 한국 측에 있음을 인상 지우도록 명령한 대목도 눈에 띈다. 실제로 지난 9일 남북장관급 회담에선 단절된 군 통신선 복구시기를 놓고 의견이 엇갈렸다. 북한 대표는 회담에서 문제삼지 않았지만 언론에 공개된 장소에서는 끊임없이 한국 측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는 게 아사히 신문의 분석이다.
이 신문은 아울러 “가장 완벽한 통일은 무력통일”이라는 김일성 국가주석 및 김정일 총서기의 유언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표현이 자료에 있다면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북한에선 동계군사훈련이 계속되고 있고, 2월 8일 북한군 정규군창설 70주년 축하준비가 진행 중이라고 소개했다. 남북협력 사업과 관련해선 한국인과 북한의 일반시민이 접촉할 기회가 없는 금강산 관광사업이나 한국의 재단과 공동으로 설립한 평양과학기술대학을 “사상 유입 우려가 없는 최고의 사업”으로 꼽고, 개성공단사업을 “협력사업의 한계”라고 지칭한 부분도 있었다고 전했다.
도쿄=박석원 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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