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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노예로 안 키우려면 감정 조절 능력 가르쳐야”

입력
2018.01.19 04:4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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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왼쪽부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교수, 김찬호 성공회대 초빙교수가 성난 대한민국을 진단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했다. 고영권 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오은영(왼쪽부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교수, 김찬호 성공회대 초빙교수가 성난 대한민국을 진단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했다. 고영권 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성난 대한민국을 가라앉힐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전문가 3인에게 해법을 들었다. 사회학자이자 책 ‘모멸감’의 저자인 김찬호 성공회대 초빙교수, 영화평론과 심리학을 접목해 ‘영상 힐링’이라는 새 영역을 개척한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교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로 유명한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각자 속한 분야에서 분노 사회를 진단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했다. 막말, 비하, 갑질, 악성댓글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이들은 한국인들이 분노를 조절하고 대응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며 “분노는 억압의 대상이 아닌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감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교수

“화를 낸 시간과 장소 꼼꼼히 기록하면

사소한 일에 욱 하는 자신 발견할 것

바람직한 분노는 사회를 바꾸는 동력”

-각자 속한 분야에서 지금 한국사회가 성난 사회라고 느낀 때는 언제인가.

오은영(오)=“성난 사회는 현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공적 영역부터 사적 영역까지, 하다못해 가게에서 물건을 살 때도 우리는 늘 화를 낸다. 최근 상담자들 중에도 본인이 분노조절장애라고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물론 그들 대부분이 그냥 화를 많이 낼 뿐이지만, 스스로 그렇게 여긴다는 것 자체가 지금 사회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분노, 화, 성마름, 욱, 이것들은 모두 감정에 속한다. 우리처럼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사회에선 눈에 안 보이는 감정을 논하고 다루는 것 자체가 어렵다. 우리가 자신의 감정은 물론이고 타인의 감정과 그 사이의 역동을 다루는 데 너무나 미숙하다는 걸 전제하고 시작해야 한다.”

심영섭(심)=“과거 임상심리학 레지던트로 근무하던 때 어머니가 딸의 손등을 칼로 찌른 사례를 본 적 있다. 엄마는 딸이 대학에 가겠다고 하자 분노를 참지 못했다. 본인이 어릴 적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았는데, 자신의 딸도 꿈을 이루지 못해야 한다고 생각한 듯하다. 악성 댓글을 달아서 사회 문제가 된 부장판사라든가,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어묵으로 표현한 ‘일베’ 등 자신이 안전한 위치에 있을 때 혹은 갑의 위치에 있을 때 하는 분노 표현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우리사회에 뜨거운 분노만큼 ‘차가운 분노’가 만연해 있다고 본다. 차가운 분노는 수동적 공격으로 나타난다. 일을 질질 끈다든가, 부부관계를 안 하는 등 상대방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분노의 폭발은 자신도 파괴시켜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법 배워야

자기를 성찰하는 순간 변화는 시작돼”

-분노는 오래된 감정이지만 최근 유독 사회병리현상으로 주복 받고 있다. 원인이 뭘까.

김찬호(김)=“인간은 어느 정도 자기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인정 받아야 한다. 지금은 타인으로부터 인정 받는 게 너무 힘들다. 일단 관계 자체가 희박하다. 한때 교사 연수를 위해 모 신도시에 자주 내려갔는데 교사들에 대한 학부모의 ‘갑질’ 사례를 유독 많이 들었다. 허허벌판 같은 도시에 아무 연고 없이 내려온 사람들은 불안하다. 자길 알아보는 사람도 없고 도움 받을 곳도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자기보다 조금만 약한 사람이 있으면 바로 공격한다. 그럼 조금이라도 우위에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악성 댓글도 마찬가지다.

고성장 시대에서 저성장 시대로 접어든 사회가 필연적으로 겪는 현상이기도 하다. 80㎞로 달리는 차 옆에서 60㎞로 달리는 사람은 별로 화나지 않는다. 그러나 20㎞로 달리는 차 옆에서 10㎞로 달리는 사람은 화가 뻗친다. 차선도 못 바꾸고 언제 5㎞로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머리 속엔 60, 80㎞로 달리던 시대의 기억이 남아 있으니 뭘 해도 성에 안 차는 거다.”

심=“분노 자체보다 분노조절장애일 때 문제가 된다. 분노조절장애 환자는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이들은 폭탄 돌리기를 한다. 이 폭탄을 안고 있으면 자신이 터져 죽을 것 같으니까 누군가에게 자꾸 주는 것이다. 아이를 때리기도 하고, 아내를 학대하기도 하고, 때론 누군가를 굉장히 은밀하게 괴롭히는 형태로도 나타난다.”

#김찬호 성공회대 교양학부 초빙교수

“분노의 감정 잘못 다룬 자신이 잘못

무조건 억누르거나 놔두지 말고

적절하게 해소하면 다양한 가능성 생겨”

-분노를 표출하는 일을 문제 삼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말도 있다.

심=“빈부격차, 삼포세대 등 분노를 유발하는 사회환경도 문제지만, 분노가 일어났을 때 겸손, 침착함, 초연함이란 말로 억압하고 사는 걸 미덕이라고 ‘라벨링’하는 것도 문제다. 그러나 분노는 막아두면 터지게 돼 있다. 분노를 분출하는 대표적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트위터가 있다. 트위터는 역기능과 순기능이 모두 있지만 여전히 사회에 날 선 비판을 할 수 있는 장소다. 이런 곳이 사회의 숨통을 틔워주고, 대화를 유도하고, 개인의 억울함을 공론화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최근 할리우드에서 일어난 ‘미투(me too) 운동’이 좋은 예다. 여성들이 연대를 통해 수치심을 이겨내고, 남성 권력에 반기를 들고, 그간 쌓인 분노를 시스템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방식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영국의 사회사상가 존 러스킨은 “강한 사람의 분노는 항상 시기를 기다린다”고 말했다. 분노가 더 모이고 강해질 때까지, 분노를 억압하는 게 아니라 분노를 바라보고 지연시킬 수 있는 힘도 필요하다.”

오=“도널드 위니컷이라는 학자가 ‘정상적 공격성(Normal Aggression)’이란 말을 하면서 ‘주어진 것을 허물고 나만의 창조적인 인생을 만들기 위한 동력원’이라고 정의했다. 윗사람의 의견에 반대하거나 좌절했을 때 다시 일어나는 것까지를 공격성이라고 정의한 것이다. 이런 공격성의 발달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문제는 우리가 이 선을 넘어 너무나 쉽게 ‘공격적’으로 변한다는 거다. 누군가의 잘못을 바로 잡으려고 할 때 상대방이 욕을 하면 바로 공격적으로 바뀐다. 조절을 못하는 것이다. 왜 그럴까.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어나 수학은 체계를 세워 가르치면서 감정 조절 능력은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럽게 배울 거라고 착각한다.”

김=“분노는 감정이다. 감정은 에너지고 에너지는 죄가 없다. 그걸 잘못 다룬 내가 잘못인 거다. 촛불 광장의 분노가 없었다면 어떻게 사회가 바뀌었겠는가. 분노를 억누르기만 하는 것도 안 좋지만 무한정 상승하도록 놔둬서도 안 된다. 적절하게 해소돼야 한다. 지하철에서 싸움을 말리고 다닌 지 수년째인데, 실패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두 사람 사이를 몸으로 막아서고 격리한 뒤 얘기를 들어주기만 하면 된다. 수치심, 외로움, 질투 등 다양한 감정이 오로지 분노 하나로 표출된다. 분노가 가장 쉽기 때문이다. 우리가 분노의 언어 밖에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외로움이나 수치심은 표현도 어렵고 주목 받기 힘들다. 반면 화내면 사람들이 바로 긴장하고 쳐다봐 준다. 존재감이 생기는 것이다. ‘나는 분노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느끼는 사람이 너무 많다.”

-우리는 성난 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김=“인간이 존엄을 지키려면 소득이 보장되고 여가가 주어져야 한다. 요새 ‘시간 빈곤층’이란 말이 많다. 여가시간이 없으면 자신의 가치를 일터에서의 위치에 따라 매기게 된다. 직장인, 노동자 외에 다른 정체성이 커져야 한다. 직장 외에 또 다른 세계, 누구도 나를 평가하거나 비교하지 않는 안전한 곳이 있어야 한다. 거기서 매력적인 사람으로 스스로를 가꿔나가야 한다. 매력적인 사람이 되면 자존감은 자연히 올라간다. 이럴 여유가 없으니 더욱 인정에 목을 매고 안 되면 화를 낸다. 분노에 끌려 다니는 노예가 되지 말고 주인이 돼야 한다.”

심=“분노조절장애를 가진 사람과 함께하는 건 전갈을 등에 업고 강을 건너는 것과 다름없다. 반드시 전갈에게 물리게 돼 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을 땐 당신으로 인해 상처받았다고, 그러니 사과를 해달라고, 또 다시 상처받고 싶지 않다고, 분명히 얘기해야 한다. 때로 상처 입은 진실이 침묵이나 거짓말보다 훨씬 낫다. 자책하지 말아야 한다.

가족 안에서 문제가 생겼다면 분노조절일지를 쓰는 게 도움 된다. 딱 하루만이라도 화를 낸 시간과 장소를 꼼꼼하게 기록하는 거다. 그러면 상황을 객관화할 수 있다. 내가 굉장히 헛된 것에 화를 내는 경우가 많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면 상황을 피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분노는 개인의 에너지로 바꿔내길 권한다. 그 분노가 사회 시스템을 바꾸는 동력이 될 수 있다.”

오=“요즘 사회를 보면 걱정스런 마음이 든다. 타인에 대한 아주 약간의 자비조차 없다.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가차없이 응징과 복수를 한다. 분노의 폭발은 상대방뿐 아니라 자신도 파괴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일이다. 이를테면 부적절하게 화를 내는 사람에게 ‘왜 화를 내냐’고 따지는 게 아니라 ‘네가 화났다는 걸 충분히 알겠다’고 일단 수긍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아이가 화를 내면 ‘어른한테 버르장머리 없이’란 훈계로 시작한다. 그러나 일단 감정을 펼치게 해준 뒤에 훈계를 해도 늦지 않다.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분노의 언어를 다시 배워야 한다. 정서의 발달은 후천적이라 나이가 들어도 배울 수 있다. 자신이 부적절하게 화를 내는 건 아닌지, 분노를 언어가 아닌 행동으로 표현하진 않는지, 가장 가까운 사람 혹은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유독 화를 많이 내진 않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자기를 성찰하는 순간 변화는 시작된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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