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프대를 타고 시속 90㎞가 넘는 속도로 내려오다가 공중으로 치솟는다. 한참을 날아 순백의 설원에 착지하는 스키점프는 날고자 하는 인간의 오랜 욕망이 투영돼 있다. 활강과 비행 모습이 아름다워 ‘스키 경기의 꽃’이라 불리는 종목이다. 평창의 설원 위로 날아오를 최고의 인간 새를 놓고 카밀 스토흐(31ㆍ폴란드)와 리하르트 프라이타크(27ㆍ독일)가 겨룬다.
’스키의 성지’가 낳은 엘리트, 카밀 스토흐
카밀 스토흐(31ㆍ폴란드)는 ‘스키의 성지’가 낳은 보물이었다. 그는 폴란드의 자코파네에서 태어났다.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스키장들이 몰려 있어 겨울이면 세계 각지에서 스키애호가들이 몰려오는 곳이다. 그 모습이 마치 성지순례를 연상케 한다고 한다. 스토흐는 17살이던 2004년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대회 데뷔전을 이 곳에서 치렀다. 2011년 생애 처음으로 월드컵 개인전 금메달을 따낸 곳 또한 자코파네다.
이러한 배경으로 그는 유년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스키를 접할 수 있었다. 미국 NBC 등 외신에 따르면 스토흐는 3살 때 스키를 배우기 시작했고, 9살 때 스키점프에 입문했다. 삼촌이 건네준 점프스키 덕분이었다. 2013년 세계선수권 대회 라지힐 개인전 금메달, 단체전 동메달을 거머쥐며 유망주로 떠오른 그는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에선 노멀힐과 라지힐 2관왕에 올랐다. 이 시기 FIS 세계랭킹도 1위를 찍었다. 하지만 올림픽 이후 내리막을 걸었다. 무릎부상까지 겹치며 2014~15시즌 랭킹 9위, 2015~16시즌 랭킹 22위로 추락했다.
올림픽의 사나이 스토흐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다가오자 부활의 날갯짓을 시작했다. 지난해 1월 4개의 월드컵 금메달을 수확했다. 2016~17시즌을 2위로 마감했다. 통산 월드컵 26승을 쌓아 올린 스토흐에게 폴란드 국민은 2017년 생애 2번째 ‘올해의 폴란드 스포츠 선수’ 영예를 안겼다. 독일 프로축구 바이에른 뮌헨의 공격수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30)도 1번 밖에 못 이룬 업적이다. 취미가 독서인데다가 체육교육학 석사학위까지 딸 만큼 학업에도 뜻이 깊다.
점프 집안에서 태어난 금수저, 프라이타크
리하르트 프라이타크는 독일 작센주에 위치한 에얼라브룬이라는 작은 마을 출신이다. 독일 스키점프 전설인 옌스 바이스플로크(1994 릴레함메르올림픽 금메달), 스벤 한나발트(2002 솔트레이크올림픽 은메달)와 같은 병원에서 태어난 사실이 알려지면서 데뷔 때부터 크게 주목 받았다.
그의 아버지 홀거 프라이타크(55) 역시 스키점프 선수 출신이다. 홀거는 통일 전 동독에서 스키점프 선수로 활동하며 1980년 FIS 월드컵에서 우승한 적도 있다. 태어날 때부터 스키점프 유전자를 넘겨받은 셈이다. 홀거는 지금도 모터사이클을 즐길 정도로 스피드 광이다. 취미도 직업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 10살 터울의 여동생 셀리나 프라이타크(17ㆍ독일)도 스키 점프 선수다.
스키점프 세계랭킹 2위에 자리할 만큼 수준급 실력을 갖췄지만 사실 그의 직업은 따로 있다. FIS 홈페이지 프로필에는 그의 직업을 ‘스포츠 군인’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는 독일 작센주에 위치한 ‘국군체육부대’ 격인 팀에서 활동하는 직업군인이다. 2011~12시즌 랭킹 6위를 찍은 뒤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채 잊혀지는 듯 했지만 올림픽 시즌이 다가오자 디펜딩 챔피언 스토흐에게 7연속 패배를 안기며 세계랭킹 1위에 올라섰다.
부상과 재도약… 순위 엎치락뒤치락
지난 8일 오스트리아 비숍스호펜에서 FIS 스키점프 월드컵 시상대에서 스토흐는 크게 포효했다. 시즌 중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4연속 열리는 월드컵 대회를 일컫는 ‘포 힐스 토너먼트’를 휩쓸며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1953년 포 힐스 토너먼트가 시작된 이래로 4개 대회를 제패한 이는 2002년 한나발트 이후 사상 두 번째다. 프라이타크에서 빼앗긴 세계랭킹 1위도 덤으로 되찾았다.
그 사이 프라이타크는 기세가 한 풀 꺾였다. 지난 4일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대회 도중 엉덩이 부상을 당하면서다. 올림픽을 목전에 두고 뜻밖의 부상을 당한 프라이타크는 이후 월드컵 대회를 포기하고 회복에 전념했다. 그는 19일부터 독일 오버스도프에서 펼쳐지는 세계선수권 대회를 통해 마지막 담금질에 나선다.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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