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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태초에 이윤이 있었다

입력
2018.01.18 16:0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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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교조주의 성서는 이어서 쓰고 있다. “그 이윤은 신성하므로 자연과 같으며 모든 것에 앞선다. 이를 해하려는 시도는 헛되며 재앙만을 초래할 것이다. 실패가 예정된 시도를 반복하는 것은 ‘을’들의 어리석음 때문이다. 시장의 이름을 믿는 자는 낙수(落水)의 은혜가 샘솟을 것이요, 거부하는 자는 대를 이어 가난의 붉은 골짜기를 헤매리로다. 잊지 말지니, 태초에 이윤이 있었다.” 정관사 ‘그’가 한정하듯 이윤은 재벌과 대자본의 것만을 의미한다. 중소기업이나 영세상인의 이윤은 물론 저소득 노동자의 보잘 것 없는 몫도 언제나 대자본의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조정된다.

시장이 종교가 된 나라의 새해는 벽두부터 ‘최저임금 망국론’으로 난리다. 수많은 중소 영세기업들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당장에 늘어나는 인건비 때문에 울상이다. 음식점들도 감원을 계획 중이고, 편의점 주인들 역시 알바생의 노동시간을 줄이는 대신 그 만큼을 자기 노동으로 메울 거라 한다. 가진 자들의 꼼수 편승도 가관이다. 한 고급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는 경비노동자 94명 전원에게 해고를 통지했고, 몇몇 사립대학들도 청소노동자를 단시간 알바로 대체키로 했다. 물가도 올랐다. 모두가 1,060원 오른 최저임금 때문이란다.

임금 인상은 물가나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 정도나 충격은 시장의 성격이나 사회가 이를 어떻게 대면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원ㆍ하청구조의 꼭대기에 있는 재벌과 대자본의 부당 이윤을 줄이면 된다. 고용이 줄고 물가가 오르는 이유는 최저임금 인상이 아니다. 두루 아는 것처럼, 거대 자본이 지배 피라미드를 이용해 지나치게 큰 몫을 챙기고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이 천원 남짓 오른 최저임금을 감당하기 버거운 것은, 성실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하청구조에 묶여 있는 탓이다. 납품단가 후려치기, 기술 빼앗기 등 시장지배력을 남용해 정당한 몫을 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외식업자나 편의점주도 마찬가지다. 프랜차이즈 구조에 묶여 각종 비용에 본사의 부당한 강매까지 부담해야 하니 자기 노동으로 ‘때울’ 수밖에 없지 않겠나. 게다가 대형 마트가 골목까지 들어와 빵이며 어묵에 소소한 생필품까지 죄다 팔아대는 게 이 나라의 ‘시장’이다. 영세 상인이 견뎌낼 재간이 없다.

사정이 이러한 데, 최저임금 인상 문제를 대하는 방식은 이상하기 짝이 없다. 장본인인 재벌과 대자본에 대한 기소는 금지된다. 고용 위축을 막고자 3조원 기금을 마련하고 현장을 돌며 임대료 인상 자제를 설득하는 정부도, 정작 거대 자본에 대해선 일언반구가 없다. 원ㆍ하청구조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는 고사하고 이들의 협조(?)를 구하는 온건한 언급조차 없으니 말이다. 한심한 정치권은 한 술 더 뜬다. 해법이랍시고 내놓는 것이 “인상 속도를 조정하고 최저임금 산입 범위를 넓히라(안철수)”는 식의 철회론 일색이다. 최저임금도 감당 못하는 중소기업은 한계기업이니 ‘시장원리’에 따라 퇴출돼야 한다는 견해도 위험하다. 이 나라 시장이 정상적이지도 않거니와, 중소기업을 한계기업으로 내모는 ‘비(非)시장 구조’ 눈감기에 시장교조주의에 동조할 뿐이다. 그나마 문제가 됐던 아파트에서 경비노동자 해고에 반대하며 관리비를 좀 더 내겠다고 나선 주민 1,000세대(본보 1월 6일 사설)가 겨우 이 사회의 체면을 살렸다고나 할까.

외환위기 이후 이 나라의 노동소득분배율은 줄곧 하락했고 저소득층 살림살이는 날로 궁핍해졌다. 대자본의 곳간에 막대한 이익잉여금이 차곡차곡 쌓인 것과 대조적이다. 낙수의 복음이 거짓으로 판명됐음에도 이윤은 아직도 금기의 영역에 있다. ‘몫 없는 이들의 몫(랑시에르)’마저 노리는 대자본이 ‘거짓 시장’ 뒤에 숨어 ‘을’들의 싸움을 부추기고 있다. 최저임금이 문제가 아니다. 부당 이윤과 비시장 구조를 손볼 일이다.

신은종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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