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관심없어!… 나는 ‘아무나’가 되련다. / 전 ‘아무나’로 사는 지금의 제 삶이 꽤 만족스러워요.”(한국일보, 2018.1.6.) 이 두 문장에서 ‘아무나’는 명사로 쓰였다. 인칭대명사 ‘아무’에 ‘나’라는 조사가 붙은 구성이 하나의 명사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명사로서 ‘아무나’의 용법은 낯설지만, 문법을 거스른 이 표현에서 우리는 신선함과 심오함을 느낀다.
인칭대명사 ‘아무’는 ‘어떤 사람을 특별히 정하지 않고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아무’에 조사 ‘도’가 붙으면 부정의 뜻을 가진 말이 뒤따르지만, ‘나’가 붙으면 긍정의 뜻을 가진 말이 뒤따른다. “아무도 모른다.”와 “아무나 안다.”의 쓰임처럼, 또는 “아무도 오지 마라.”와 “아무나 와도 된다.”의 쓰임처럼. 이처럼 어떤 조사가 붙느냐에 따라 뒤따르는 말의 성격이 달라지다 보니, ‘아무’와 조사의 결합 구성이 부정 혹은 긍정의 뜻을 지닌 의미 단위처럼 느껴질 수 있다. ‘아무’와 ‘도’의 결합체인 ‘아무도’는 ‘사람이 전혀 없음’이라는 부정의 의미로, ‘아무’와 ‘나’의 결합체인 ‘아무나’는 ‘사람을 모두 포괄함’이라는 긍정의 의미로 읽힐 수 있는 것이다. 명사 ‘아무나’는 이런 용법에 기대어 만들어진 듯하다.
‘아무나가 되다’나 ‘아무나로 살다’에서 명사 ‘아무나’는 ‘특별한 자격이나 조건으로 제한되지 않은 사람’을 뜻한다. 이 말로 나타낼 수 있는 사람에 제한이 없기 때문에 ‘아무나’가 될 수 있는 자격이나 조건도 없다. 현재 상태의 우리 모두가 ‘아무나’인 것이다. 경쟁에 지친 한국 사회, ‘나아져야 한다는’ 그리고 ‘남과 달라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 끝에 명사 ‘아무나’가 만들어진 건 아닐까.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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