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된 이후 첫 한국인 행장, 8일 3년 연임으로 2기 시작
인사청탁ㆍ지배구조 논란에서 자유로워
“토종 제일맨이 SC 한국 철수 앞장서” 오해도
디지털 뱅킹 본격화로 규모 줄인 게 되레 경쟁력
100세 시대 은행, 수십년 활동 더할 40~70대 도와야
최근 금융계는 청탁ㆍ채용 비리 등에 대한 사회적 비판, 금융지주 회장 연임 등을 둘러싼 지배구조 문제, 관치 논란 등에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풍파에서 자유로운 곳이 있다. 바로 스탠다드차타드(SC)가 지난 2005년 미국계 사모펀드 뉴브릿지캐피탈로부터 인수하며 출범하게 된 SC제일은행이다.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공평동 본사에서 만난 박종복 SC제일은행장은 “지난 3년간 청탁과 관련한 전화를 단 한 통화도 받은 게 없다”며 “금융당국이나 정치권 등에도 외국계인 SC제일에는 청탁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미 알려진 것”이라고 말했다. 박 행장은 외환위기로 제일은행이 외국계 은행이 된 지 16년만인 2015년 첫 한국인 행장으로 선임된 뒤 지난 8일 연임(임기 3년)에도 성공했다.
실제로 SC제일은행은 인턴 사원을 뽑을 때도 정규직 직원 채용 절차를 따르는 등 엄격한 과정을 거친다. 채용비리와 연루된 임직원은 아무리 훌륭한 실적을 올려도 무조건 해고되는 게 SC그룹의 원칙이라고 박 행장은 설명했다.
SC그룹은 특히 경영성과로 최고경영자(CEO)를 평가하고 투명한 승계 프로그램을 운용, 지배구조와 관련한 위험 요인(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있다. CEO는 경영실적에 따라 시장에서 평가 받는 게 원칙이다. 이에 따라 1년도 안 돼 교체되기도 하고, 10년 이상 장기 집권하기도 한다. SC그룹의 모든 임원은 후보자군을 키우는 게 의무다. 회장, 행장, 본부장 등 모든 임원들이 자신의 자리를 대신할 인물 3인 이상을 선정해 6개월 단위로 평가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박 행장은 “그룹 임원들이 이들 후보군에 대해 평가하고 격려하며 육성하는 데 힘을 쏟고 있고 당사자가 유일한 후보가 아니라는 사실도 주지시킨다”며 “후보군에서 탈락할 수도 있지만 노력하면 다시 임원 후보가 되는 등 투명하고 확고한 승계 프로그램이 정착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최근 금융당국이 국내 금융권에 요구하는 것이 이런 투명하고 명확한 지배구조 체계를 갖추라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국제적인 기준에 맞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자율권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 행장이 선제적으로 단행한 몸집 줄이기도 지금은 약이 됐다. 그는 취임 후 40개가 넘는 점포를 없애 작년 말 총 239개로 줄였고, 같은 기간 직원도 600여명을 줄여 4,529명으로 감축했다. 일각에선 토종 ‘제일맨’인 그가 SC의 한국 철수에 앞장선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그러나 박 행장은 “강력한 구조조정은 미래를 내다보고 단행한 힘든 결정이었다”며 “그 결과 지금은 비(非)대면 디지털 금융시대에 최적화된 은행이 됐다”고 말했다. 2015년 2,858억원에 달했던 적자는 2016년 2,245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둬 흑자 전환한 뒤 지난해에는 3분기까지만도 순익 2,377억원을 달성했다.
연임 성공으로 2기를 맞이한 박 행장은 향후 고객 중심의 은행을 지향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른바 인간적인 금융, ‘휴먼은행’이다. 상위 1% 자산가를 겨냥한 은행이 아닌 우리 사회의 중산층을 더 두텁게 하는 은행이 되겠다는 게 그의 각오다. 직원들에겐 수명연장과 노령화 등 고객의 구조적 변화를 주목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는 “미래 잠재 고객인 젊은 고객도 중요하지만 40~70세 중장년층도 여전히 주요 고객”이라며 “100세 시대엔 이들 중장년 고객들도 수 십 년 더 활동해야 하는 만큼 젊은층 만큼 소중하다”고 강조했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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