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논란을 빚은 유치원ㆍ어린이집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를 원점에서 재검토해 내년 초 발표하기로 했다. 지난달 27일 영어수업 금지 정책을 내놓은 지 한 달도 안돼 정책을 사실상 백지화한 것이다. 교육부는 “혼란을 야기한 데 대해 죄송하다”고 사과했지만 그 이상의 책임을 느껴야 한다.
이번 사태를 보면 영어 교육에 대한 교육당국의 비전이나 철학은 물론 정책 추진의 기본전략조차 없다는 사실이 여실하다. 유치원ㆍ어린이집 영어수업 금지는 올해 3월부터 공교육정상화법(선행학습금지법)에 따라 초등학교 1ㆍ2학년 방과후 영어수업이 금지되기 때문에 정책의 일관성 측면에서 나온 것이다. 조기 영어 교육이 모국어 습득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지적과 과도한 선행학습에 대한 사회적 우려를 반영한 조치여서 공감을 얻을 만한 부분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취지가 좋아도 현장에서 수용할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면 명분도 실효성도 놓치게 마련이다. 당초 2014년 관련법이 만들어진 후 3년간 유예기간을 둔 것도 부작용을 최소화하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교육당국은 지금껏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가 “때가 됐으니 시행하겠다”고 하니 학부모들 반발이 없으면 오히려 이상하다. 당장 영어수업이 중단되면 그 수요가 사교육으로 옮겨갈 게 뻔한 현실을 교육당국만 모른 셈이다. “3만원짜리 영어수업을 막아 수십만 원짜리 사교육을 부추기는 정책”이라는 반발에 답을 내놓지 못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교육부가 금지 방침을 철회한 것인지 아니면 방침을 유지하고 시행시기를 재검토하는 것인지에 대한 방향도 정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민 의견을 들으면서 열린 마음으로 개선방안을 찾아보겠다”는 답변이 고작이다. 학부모들 반발이 거세니 일단 1년 동안 시간이나 벌어보자는 심산이다. 영어 선행학습이 정말 심각하다고 판단되면 소신과 철학을 갖고 설득을 할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보이지 않는다.
교육부가 설익은 정책을 발표하고 여론의 뭇매를 맞은 뒤 번복한 행태가 한두 번이 아니다. 수능시험 절대평가 확대 결정은 여론 반발로 1년 미뤘고, 초등학교 한자 병행 확대 정책도 아무런 해명 없이 2년 만에 슬그머니 폐기했다. 그러니 문재인 정부 정책여론조사 평가에서 교육정책 지지율이 35%로 최하위를 기록하는 게 당연하다. 교육개혁처럼 국민 관심이 큰 정책은 부작용을 미리 예측한 뒤 정교한 시행계획을 마련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필수다. ‘김상곤 교육부’의 깊은 반성과 분발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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