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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의 제5원소] 슬기로운 ‘분단’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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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의 제5원소] 슬기로운 ‘분단’ 생활

입력
2018.01.16 16:1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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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종영하는 화제의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처음 방송되었을 때 나는 이 드라마가 요즘 감옥에 많이 가 있는 전직 고위 관료들, 특히 평소에 드라마를 즐겨 보셨다는 ‘그분’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줄 알았다. 실제 드라마 내용은 비리 정치인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앞둔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투수가 범죄자가 되어 감옥 생활을 하게 되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소재도 참신하지만 꼼꼼한 취재 덕분인지 교도소 생활을 둘러싼 디테일이 살아 있다. 주연 조연 할 것 없이 등장인물들 각각이 저마다 품고 있는 사연들은 모두가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한 편의 영화 같은 이야기들이다. 드라마 속 감옥생활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면 감옥 밖의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러다 문득 우리의 평범한 일상도 따지고 보면 커다란 분단의 감옥에 갇힌 재소자의 일상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실현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 중 하나였다.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어디 도망갈 곳도 없다. 분단이라는 감옥은 물리적으로도 굉장히 정확한 표현이다. 더 큰 문제는 한반도에서 살고 있는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전쟁 가능성이 롤러코스터를 탔다는 점이다.

물론 전쟁의 위협이 아직 사라진 것은 전혀 아니다. 평창에서 열리는 겨울 올림픽과 패럴림픽이 끝날 때까지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잠시 유예되었다고 해야 보다 정확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시간을 벌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남북 고위급 회담은 사막의 오아시스보다도 소중한 기회이다.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를 정착시킬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 지금 우리에게 평창 올림픽은 국제 스포츠 빅 이벤트 그 이상이다. 또 하나 운이 좋았다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초래된 사실상의 무정부 상태를 국민들의 힘으로 슬기롭게 극복하고 평화롭게 새 정부를 수립했다는 점이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을 진행하고 화성 15호를 쏘는 동안 우리가 여전히 국내 정치 혼란을 극복하지 못했다면 지금 한반도 상황이 어떻게 흘러갔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지난 촛불혁명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만 되살린 게 아니라 적어도 동북아시아의 평화에도 큰 공헌을 했다.

북핵 문제 해결은 결국 한반도 정전체제의 종결과 평화체제로의 전환까지 이어져야 한다. 남북통일로 분단의 비극이 근본적으로 해결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 전까지는 좋든 싫든 분단의 감옥 속에서 ‘슬기로운 분단 생활’을 모색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 진행 중인 적폐청산의 중요한 축이 국정원과 군사이버사령부의 댓글 조작을 통한 불법 정치 개입이다. 이들의 반민주적 불법 정치 개입은 국가안보의 탈을 쓰고 자행되었다. 뿐더러 국가안보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권에서 국민과 국회 몰래 원전을 팔아먹겠다고 국군장병의 목숨을 팔아먹는 계약을 하기도 했으니, 이분들이야말로 진짜 ‘슬기로운 감빵 생활’을 누려야 할 분들 아닌가.

이처럼 분단에 기생해 기득권을 챙겼던 분단적폐의 청산이야말로 ‘슬기로운 분단 생활’의 첫걸음이다.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국내 민주주의를 압살하면서까지 지킨다고 했던 국가안보나 한반도 상황은 지난 이명박-박근혜 9년 동안 최악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원칙과 철학 없는 대북 강경책은 북한의 6차 핵실험과 화성 15호로 귀결되었다. 한반도 전쟁 위험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실패한 정책을 고집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한반도를 위기 상황으로 몰아간 데 대한 반성은 하지 않고, 북한의 핵 포기 없는 고위급 회담은 무의미하다는 논리로 또 다시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북한의 핵 포기는 우리의 정책적 노력의 결과로 나오는 것이지 지금 우리가 어떤 조치를 취하는 전제조건이 아니다. 이는 마치, 피타고라스 정리를 증명하라는 문제를 풀기 위해 직각 삼각형을 그리고 있는 학생에게 피타고라스 정리가 아직 증명도 되지 않았는데 직각 삼각형은 왜 그리느냐고 야단치는 격이다. 북한의 핵 포기가 그렇게 쉬운 일이었으면 지난 수십 년 동안 왜 해결되지 않았겠는가?

‘슬기로운 분단 생활’을 위한 또 다른 방법은 4차 산업혁명의 기술들을 이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예컨대 인공지능은 최적화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의 딥마인드는 자신의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구글 데이터센터의 냉각비용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도 했다. 60만 대군과 천문학적인 국방비를 가장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우리가 개발해야 하지 않을까? 북한의 도발이나 이상 징후를 미리 파악할 수 있는 감지기술과 빅데이터 수집 및 분석기술 개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제는 70년도 넘은 우리네 ‘분단 생활’도 슬기롭게, 이왕이면 더욱 스마트하게 살아보자. 분단이라는 감옥생활이 우리 세대에도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면.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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