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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영의 식물과 인간] 사람은 식물 없이 살 수 없다

입력
2018.01.16 16:07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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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반세기 동안 열심히 숲을 가꾼 결과 이제는 우리도 산림의 혜택을 향유하며 살 수 있게 됐다. 반 세기 동안의 산림녹화 정책의 결과 입목 축적량이 2010년 기준으로 헥타르(ha) 당 125.6㎥에 이르러 OECD 국가 평균보다 높아졌다. 그러나 서울만 해도 도심의 숲은 일본 도쿄나 미국 뉴욕, 영국 런던의 30∼50%밖에 안 된다. 지금보다 2∼3배는 많아져야 하지만, 지금도 곳곳에서 산자락이 잘려나가고, 그 위에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는 게 현실이다.

노자(老子)는 3,000년 전에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 했다. ‘하늘과 땅은 만물을 길러냄에 있어서 (어떤 존재에) 특별히 어진 마음을 베풀지 않는다’는 뜻으로, 인간이 자연과 평등하게 어울려 살라는 가르침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특권이라도 부여 받은 양, 겁 없이 물을 더럽히고 바람을 더럽히고 땅을 더럽혀 왔다.

지구상의 식물은 저마다 독특한 의미와 상징성을 띠고 있다. 고향마을 입구의 정자나무나 당산나무의 80%를 차지하는 느티나무는 한국인에게는 유난히 신령스러운 나무로 여겨져 왔다. 우리 조상은 나이가 오래 된 큰 나무에 어떤 신기한 힘이 깃들어 있는 것으로 믿고 그 힘을 빌려 재앙을 막기를 바라서 복을 빌었다. 마을 어귀의 느티나무 노거수(老巨樹)가 지금까지도 잘 보존되어 온 것은 마을의 수호신처럼 신성시돼 온 결과다. 이 느티나무 당산목에 마을 사람들은 건강과 장수, 풍년을 기원하며 제사를 올렸다. 또 그 둘레에 새끼줄로 금줄을 치고 한지에 쓴 발문(跋文)을 끼워 소망을 빌었다. 느티나무는 그렇게 득남(得男)과 장수의 표상이었다.

동백꽃은 색깔이 유난히 붉어 정렬적 사랑을 나타내고, 꽃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모습이 아름다운 데서 여인의 미(美)를 상징한다. 벚꽃은 한꺼번에 피었다가 한 잎씩 일주일 안에 모두 떨어지기 때문에 단결력과 희생정신의 표상으로 여겨졌다. 사과는 평화와 아름다움을 상징하고, 대추 열매의 붉은빛은 강한 생명력과 영원한 청춘의 표상으로 풍요와 다산(多産)의 신화적 의미를 함축한 나무였다. 감나무 고목은 흔히 득남(得男)과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는 대상이 됐다.

인간은 식물 없이 살 수 없다. 녹색식물의 광합성작용을 통해 방출된 산소는 모든 동물의 생존에 불가결하고, 합성된 탄수화물은 생명의 원천인 에너지를 준다. 통증을 덜어주고, 질병을 치유하는 효능은 흔히 말하는 약용식물에만 한정되지도 않는다. 이처럼 식물은 인간에게 생명의 근원인 동시에 눈을 즐겁게 하는 볼거리가 되고, 숲 체험의 효능에서 잇따라 확인되듯, 함께 하는 것만으로 인간에게 심리적 안정과 평화, 행복을 준다.

아울러 식물은 우리에게 자연의 이치와 삶의 지혜를 일러주기도 한다. 끊임없이 흐르는 세월 속에서도 때가 되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자손을 퍼뜨린다. 추운 겨울에는 미리 잎을 떨구고 알몸으로, 또는 땅속 뿌리나 줄기로 추위에 견딘다. 추위에 견디는 가장 경제적인 방법이다. 이런 자연과 교감하며 그 섭리에 순응하는 것이야말로 인간 삶의 질을 높이는 길이다.

정구영 식물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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