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강남북 균형개발’ 개념은 시대에 따라 내용이 180도로 완전히 바뀌었다. 정부가 강남 개발에 착수한 1970년대엔 서울의 확고한 단일 도심인 강북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한 강남 개발을 촉진하려는 정책적 필요에 따라 쓰였다. 실제로 강남 개발 초기엔 덩그러니 아파트들을 지어 놨으나 강북 주민 누구도 선뜻 이주에 나서지 않았다. 그러자 박정희 정권은 강남북 균형개발을 내세워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강력한 강남 개발책을 강행한다. 핵심은 명문고 이전과 기반시설 육성이었다.
▦ 종로, 용산, 성북, 서대문구 등 강북 4대구 인구를 강남으로 이주시키는 게 목표였다. 강북 도심에 백화점, 시장, 대학교, 유흥음식점, 입시학원 등의 신규 진입을 제한하는 ‘특정시설 제한구역’이 설정됐다. 이어 1976년 경기고를 강남구 삼성동으로 이전한 것을 시작으로 강북 명문고들을 대거 강남으로 옮겼다. 같은 해엔 시설 제한을 넘어, 4대문 안 입시학원을 사실상 반강제로 한강 건너로 이전시켰다. 그런 정책에 힘 입어 점차 강남 이주 인구가 늘었고, 세칭 ‘8학군’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 강남북 균형개발의 의미가 바뀐 건 ‘88 서울올림픽’ 전후다. 그 때부터는 강남에 뒤처진 강북을 개발하자는 의미로 쓰였다. 이미 ‘강남 부자, 강북 서민’의 계층 도식이 굳어졌다. 지자체 재정 여력이 10배 이상 차이가 나고, 교육 문화 환경 등 생활여건 전반에서 점점 격차가 벌어졌다. 1988년 서울시가 ‘강남북 균형개발 계획’을 처음으로 내놨다. 1990년엔 건축물용적률허용기준 제한, 유흥업소신규허가금지 등 강북개발 억제책이 풀렸으며, 강북 명문고의 강남 이전이 뒤늦게 금지되기도 했다.
▦ 그 이래 정부와 정치권에선 입버릇처럼 강남북 균형개발을 외쳐 왔다. 지자체 재정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일부 입법도 이뤄졌고, 이런저런 강북 재개발 사업도 벌여 왔다. 하지만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강남 아파트 평균 매매가가 8억669만원으로 강북 매매가(4억9,090만원)와 격차가 사상 최대폭으로 벌어졌다는 뉴스만 봐도 그렇다. 부동산 정책 담당 고위관료 대부분이 강남 거주자라는 얘기가 나온 지 오래다. 이젠 관료들도 강남 기득권자가 되어 짐짓 강북 개발을 외면하고 있는 것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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