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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공정사회의 바로미터

입력
2018.01.15 14:5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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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합의 등으로 남북관계가 개선되는 분위기다. 한반도 평화분위기 조성 측면에서는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북한의 핵무기 개발 강행으로 인해 촉발된 남북 간 긴장 국면이 쉽게 풀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임진왜란과 6.25 전쟁이라는 비극을 경험한 우리나라를 생각하면 ‘천하수안 망전필위(天下雖安 忘戰必危), 평화로울 때 안보를 생각해야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 있다’는 옛말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요즈음이다.

국가나 사회가 위기에 처할수록 절실해 지는 것이 또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 사회지도층에게 요구되는 높은 도덕적 의무가 아닐까 한다. 2,000년 역사의 로마제국을 지탱해 준 정신으로, 귀족 등 사회지도층이 앞장 서서 전쟁에 참여하고 솔선수범한 것은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다. 또한 570여 년 전통의 영국 이튼 스쿨도 그러했다. 대다수 학생들이 고위층 자제들임에도 1,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2,000여 명이 꽃다운 청춘을 바쳤다. 우리나라에서도 가깝게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으로서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석주 이상룡 선생 일가를 비롯, 많은 독립투사들이 그 모범을 보여준 바 있다.

현존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나라는 병역법 제3조에서 병역의무를 명시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병역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그러나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돈이 많으면 병역을 면제받고 ‘돈 없고 빽 없는’ 자녀들만 군대에 끌려간다는 부정적 인식이 사회에 만연했던 기억이 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병무청에서도 부끄러운 과거에 대한 뼈저린 반성과 함께 예외 없는 병역이행을 위해 병역판정검사 개선, 특별사법경찰제도 도입을 비롯해 다양한 제도와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전방위적 노력을 지속해왔다.

특히 1999년도에는 공직을 이용한 병역면탈을 차단하고 공정한 병역이행 문화정착을 위해 고위공직자 병역사항 공개제도를 도입하였다. 지난해 말 기준 병역 이행률을 보면 4급 이상 공직자 본인은 90.4%, 직계비속은 95.8% 수준인데, 1999년 당시와 비교해 보면 공직자 본인은 8.2%p, 직계비속은 6.5%p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공직사회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병역문화가 정착되어 가고 있다는 방증으로, 제도의 실효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또한 공직 후보자 간 형평성을 제고하고 국민의 알 권리 신장을 위해 올해부터는 국무위원 후보자 중 병역사항 사전공개 대상을 기존 국무총리 등에서 모든 인사청문 대상자로 범위를 확대하였다. 나아가 사회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병역사항 공개대상 범위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각급 기관의 인사정보시스템과과 연계하여 공개의 신속성을 높이는 등 다각적 제도개선 방안도 연구하고 있다.

최근 정치적 변혁을 경험한 국민들의 공정사회에 대한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그러나 ‘수저 계급론’이나 ‘헬 조선’과 같은 말들의 빠른 유행은 아직까지 우리 사회가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보여준다. 지난해 7월 필자의 취임 일성도 ‘반칙과 특권 없는 공정병역’이었다. 사회통합 측면에서도 우리 사회와 젊은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는 공직자 등의 공정한 병역이행은 단순한 의무이행 이상의 가치가 있다.

사회지도층의 언행은 그 사회의 품격을 반영한다고 한다. ‘어른은 어린이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회지도층은 사회 구성원들의 모범이 되어야 하며, 그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만큼 사회적 존경과 추종에는 책임과 희생도 함께 따른다는 말이다.

병역은 국가안보의 근간이면서 공정사회의 바로미터로 인정받을 때 더욱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우리 사회, 특히 병역에서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더 이상 희망사항이어서는 안 된다.

기찬수 병무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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