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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언 칼럼] 최경환 형에게

입력
2018.01.14 14:4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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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경선에서 싱그럽던 초심 빛 잃어

쓴 소리 유승민 대신 박근혜 실세로 부상

친박의 독선ㆍ오만을 국민이 총선서 심판

먼저 심심한 위로를 보냅니다. 5년 전 이맘때 저도 형이 계신 곳에 갔지요. 그 해 겨울도 추웠습니다. 제가 열 달을 거기 있는 동안 형은 두 번이나 찾아주셨습니다.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합니다.

우리는 17대 국회에서 처음 만났고 ‘푸른 모임’이란 의원단체에서 우정을 나눴습니다. 유승민 이혜훈 나경원 권영세 임태희 박재완 진영 등이 참여한 모임은 패기가 넘쳤습니다. ‘그 놈’의 계파를 초월해 한나라당을 건전한 보수야당으로 만들어 정권교체 주역이 되자는 게 공동목표였지요. 제주도 MT를 간 날 유 의원이 박근혜 당시 대표로부터 비서실장 제의를 받은 사실을 고백했고, 우리는 유 의원 개인과 당의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갑론을박했던 기억이 또렷합니다. 그 후 형은 유 의원 소개로 박근혜 후보와 인연을 맺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명박ㆍ박근혜의 대선후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우리의 초심은 빛을 잃어갔지요.

2007년 후보 경선 과정에서 형은 그 유명한 ‘네거 남매’(유승민, 이혜훈)와 더불어 이 후보에 대한 공격의 선봉에 섰지요. 당시 형이 이 후보의 재산이 수천억 원이 넘는다고 폭로한 일 기억하십니까? 이 후보 측에서 근거를 대라고 하니 형은 “그럼 아닌 증거를 대라”고 했지요. 그 험한 경선이 끝나고 이 후보는 일생일대의 실책을 범했습니다. ‘정관의 치’로써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가로 평가 받는 당 태종의 “전쟁 후엔 반드시 적을 포용하라”는 가르침을 저버린 것입니다. YS와 DJ도 이 가르침대로 각각 민정계 최창윤과 김중권을 비서실장으로 기용했지요. 당시 정병국 의원과 저는 이 후보에게 친박 포용을 권하면서, 후보 비서실장으로 형을, 원내대표로 김무성 의원을 천거했습니다. 그러나 이 후보는 이미 임태희 비서실장과 안상수 원내대표를 내정해 놓았더군요. 만약 이 후보가 그때 친박을 끌어안았다면 그 후 친박은 소멸하고 지금의 박근혜는 없었을 겁니다.

MB 선대위는 그나마 이 후보 자신이 위원장인 경제살리기위원회 부위원장을 형에게 맡겼습니다. 대선이 끝나고 형은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경제2분과 간사를 했고 이명박 정부에서 산자부 장관을 지냈지요. 일종의 트로이 목마였나 싶습니다.

세월이 흘러 형은 쓴 소리 잘하는 유승민을 제치고 박근혜의 실세로 부상했습니다. 모든 길은 최경환으로 통한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형은 이명박 정권에서 제가 갈 뻔 했던 길을 갔습니다. 휘황찬란한 꽃길이었고, 2016년 총선 무렵 꽃이 만개했습니다. 유치찬란한 진박 마케팅과 살생부 파동이 빚어지고, 박근혜는 박정희 시대를 넘어 이승만 시대로까지 치달았고, 친박의 오만과 독선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야당이 분열되어 있었는데도 총선 상황은 갈수록 어두워져 갔으나 친박은 오직 공주님의 신통력만을 믿고 급기야 ‘옥쇄 들고 나르샤’라는 희극까지 빚어야 했습니다. 이 역겨운 상황을 참지 못해 들고 일어선 것은 친이도 야당도 아닌 국민이었습니다. 그나마 새누리당이 제2당이라도 된 것은 국민의 당의 선전 덕분이었지요. 영남을 제외하고 중부권에서 살아남은 새누리당 의원들의 지역은 거의가 국민의 당 후보가 20% 안팎을 득표한 곳이었으니까요.

저는 한때 MB 정권 일등공신이란 소리도 들었습니다만 천만의 말입니다. 이명박 정권의 일등공신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면 문재인 정권의 일등공신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분명합니다. 우리 정치는 늘 그랬습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 정권도 한없이 겸손해질 필요가 있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 걱정입니다.

제가 옥중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독서와 생각뿐이었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억울함보다는 과거의 제 잘못이 샘물처럼 흘러나왔습니다. 아스라한 어릴 적 실수부터 최근의 교만과 경솔함까지 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무죄를 선고 받을 때 “법정에서는 무죄지만 인생에서는 유죄”라고 했던 것입니다. 비록 정치적으로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저는 진심으로 형이 잘 되길 빕니다. 부디 더 ‘큰 사람’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정두언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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