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운영체제(OS) 윈도로 유명한 마이크로소프트(MS)는 부연 설명이 필요 없는 글로벌 기업이다. MS를 설립해 30여 년을 이끈 천재 개발자 빌 게이츠 역시 마찬가지다. 전 세계인 누구나가 알듯이 윈도는 PC 시장을 지배했고 빌 게이츠는 은퇴 이후 자선사업가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세계적인 부호다.
너무나 화려하게 비상한 MS인 만큼 창업자 빌 게이츠의 존재감과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이 때문에 빌 게이츠 이후 그를 대신할 최고경영자(CEO)는 MS의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창업 멤버로 2대 CEO를 맡은 스티브 발머가 모바일 사업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2014년 초에도 전 세계의 시선은 MS 수장의 자리로 쏠렸다.
3대 CEO에는 외부인사 영입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지만, 예상을 깨고 사티아 나델라(Satya Nadellaㆍ50) 클라우드ㆍ엔터프라이즈 수석부사장이 깜짝 발탁됐다. 그에게 CEO를 맡긴 빌 게이츠는 기술고문으로 한발 물러났다.
나델라 CEO는 40대 후반의 비교적 젊은 나이, 게다가 미국 주류 사회에서 벗어난 인도 출신이었다. 안팎의 우려가 쏟아졌지만 그가 CEO로 MS를 이끈 지 벌써 4년이 흘렀다. 그동안 걱정은 찬사로 바뀌었다. OS에 의존했던 MS는 모바일 클라우드 기업으로 성공적인 체질개선에 성공했다.
인도 출신 CEO의 담대한 포부
나델라 CEO는 1967년 인도 남부 텔랑가나주의 하이데라바드에서 태어났고 망갈로르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다. 미국 위스콘신대 밀워키캠퍼스에서 컴퓨터공학 석사, 시카고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각각 취득했다. MS는 첫 직장이 아니다. 그는 미국의 컴퓨터ㆍ사무기기 기업 선마이크로시스템스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다 1992년 MS에 입사했다.
나델라 CEO는 MS에서 비즈니스 솔루션 개발 등을 담당하다 클라우드ㆍ엔터프라이즈 사업을 주도하며 두각을 드러냈다. 지금은 MS의 새로운 수익원이 된 ‘오피스365’도 그가 수석부사장을 맡았던 2013년 출시했다. 오피스365는 워드ㆍ엑셀ㆍ파워포인트 등 MS오피스 문서를 인터넷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꺼내 읽고 편집이 가능한 클라우드 서비스다.
능력을 인정받아 입사 22년 만에 MS의 최정상에까지 올라갔지만 나델라 CEO가 취임한 2014년은 MS의 최대 암흑기였다. 모바일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반면 PC시장의 성장은 멈췄는데, MS에게는 모바일 시장을 뚫을 무기가 없었다. 스마트폰 시장은 애플이 아이폰으로 석권했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는 구글의 안드로이드가 이미 장악했다. MS가 처음 개발한 태블릿마저도 애플과 삼성전자의 차지였다.
취임 뒤 5개월이 지난 2014년 7월 나델라 CEO는 전 직원에게 ‘담대한 포부와 우리의 핵심’이란 제목의 이메일을 보내 위기에 봉착한 MS의 대대적인 변신을 예고했다.
그는 ‘모바일 퍼스트, 클라우드 퍼스트’란 비전을 제시하며 MS의 핵심을 ‘플랫폼과 생산성을 제공하는 회사’로 재정의했다. PC용 OS로 성공한 기업이 더 이상 PC에 얽매이지 않을 뿐 아니라 부진을 거듭한 단말기 사업마저 손을 떼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한발 더 나아가 그는 같은 해 10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진행한 마이크로소프트 연례행사에서 “MS는 리눅스를 사랑한다(‘Microsoft Loves Linux)”고 밝혀 충격을 던졌다. 오픈소스 OS 리눅스는 PC 전성시대 윈도의 강력한 라이벌이었기 때문이다. 독보적인 기술력을 폐쇄적으로 운영하며 최정상을 찍은 MS가 모바일 사업의 성공을 위해 본격적으로 개방과 연결의 시대로 진입했다.
나델라 CEO는 사업 조정과 함께 직장 문화의 변화도 동시에 추구했다. MS의 침체가 외부엔 오만하게 비치고 내부적으로는 경직된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MS를 호기심 많고, 도전적인 사람들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직장으로 만들겠다는 그의 의지는 취임 첫날 전 직원에게 보낸 메일에 담겨 있다. “우리 IT업계는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혁신만을 존중합니다.”
’거인’을 다시 일으킨 모바일ㆍ클라우드 퍼스트
나델라 CEO가 주도한 MS의 ‘모바일 퍼스트, 클라우드 퍼스트’ 전략에 글로벌 시장은 반응했다. MS 주가는 나델라 CEO 취임 이후 3년간 60% 이상 가파른 상승을 거듭했다. 지난해 2분기 MS 시가총액은 5,000억 달러를 돌파한 이후 꾸준히 오르고 있다. MS 시총이 5,000억 달러를 넘어선 것은 2000년 이후 무려 17년 만이다.
특히 클라우드 사업 부문이 급성장하고 있다. MS의 클라우드 플랫폼 및 서비스인 ‘애저(Azure)’는 2010년 10월 론칭 이후 업계에서 가장 많은 전 세계 42개의 리전(Regionsㆍ데이터센터 묶음)을 확보했다. 전 세계 데이터센터는 100개 이상이고, 지난해 2월 국내에서도 MS의 데이터센터가 가동을 시작했다. 클라우드 업계 점유율 1위인 아마존 웹 서비스(AWS)와 겨룰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지난해 3분기 애저를 포함한 MS의 클라우드 사업 전체 매출액은 204억달러(약 21조원)에 이른다. 2년 전 수립한 클라우드 매출 목표치 200억달러를 가뿐히 돌파했다. 애저 매출액은 전년에 비해 90%씩 늘었고 서버 및 클라우드 서비스 매출도 17%가 증가했다.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클라우드 사업 매출액은 이제 MS 전체 매출액에서 약 28%를 차지한다. 여기에 오피스365 등 클라우드와 관련된 제품 및 서비스가 다른 사업에도 포함돼 있어 실제 클라우드를 통해 거두는 매출은 수치로 나타나는 것 이상이다.
아직도 MS의 주력상품이 PC용 윈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MS는 2012년에도 오피스가 가장 많은 매출을 일으켰고 다음이 클라우드와 엔터프라이즈였다. 현재는 MS의 투자가 클라우드를 중심으로 진행 중이라 앞으로는 클라우드 매출 비중이 더욱 커질 가능성이 크다.
MS의 구원투수 역할을 훌륭히 수행 중인 나델라 CEO지만 취임 초기엔 예기치 못한 구설로 위기를 맞기도 했다. 2014년 10월 “여성은 임금 인상을 요구할 필요가 없고 그저 회사의 임금 지급 시스템을 믿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며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비난 강도가 세지자 그는 트위터를 통해 사과하며 급히 진화, 공인으로서의 치명타는 피해갔다.
나델리 CEO는 지난해 9월 미국에서 ‘힛 리프레시(Hit Refresh)’란 저서를 출간했다. 인터넷 웹페이지의 ‘새로 고침’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책 제목에 대해 그는 “새로 고침은 모든 것을 지우고 새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일부는 그대로 두되 새로운 내용을 업데이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40년의 역사를 가진 MS의 장점은 그대로 살리되 변화해야 할 부분을 콕 찍어 ‘리프레시’ 하겠다는 은유로 풀이된다.
그는 자궁 내 질식을 겪어 사지가 마비되고 시각을 잃은 큰아들이 자신을 바꾼 이야기도 풀어냈다. 나델라 CEO는 책을 통해 “공감이라 부르는 특별한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며 “앞으로 더욱 기술이 발전할 세상에서 공감은 그 무엇보다 가치 있는 의미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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