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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비 다이어트] 특정업체 밀기, 물량 부풀리기, 부실한 회계감사… 관리비 삼키는 ‘주적’

입력
2018.01.13 04:40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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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특정사 밀어주려 입찰기준 변경

방수ㆍ도장 공사에 5억 헛돈 나가

감리 부실 틈타 중고부품 쓰기도

“규모 큰 공사 감리 의무화하거나

주민검수 제도화 고민해 볼만”

#2

입주자 대표ㆍ관리사무소가

장기수선충당금ㆍ수선유지비를

엉뚱하게 쓰는 경우도 많아

입주민이 문제 찾아내면

자료 열람ㆍ공개 허용해야

아파트 관리비를 줄이기 위한 첫 단계는 관리비가 새 나가는 구멍을 찾아 메우는 일이다. 구멍을 제때 막지 못하면 입주민들이 내지 않아도 될 비용을 더 부담해야 하고, 고스란히 관리비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국무조정실 정부합동부패척결추진단의 아파트 관리 비리 2차 점검(2017년 4월), 경기도의 공동주택 장기수선 분야 기획 감사(2017년 8월), 서울시의 ‘맑은 아파트 만들기’ 합동 실태조사(2014년 7월)의 적발 사례들을 분석한 결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관련 비리를 줄이기 위해 노력한 덕분에 적발 횟수가 줄고 있지만 같은 유형의 문제들이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문가들이 점검과 단속도 필요하지만 법ㆍ제도적 차원의 근본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정 업체 밀어주기 위한 갖가지 수법 동원

관리비가 새는 가장 큰 구멍은 각종 공사, 용역이다. 업체 선정 과정부터 특정 업체 밀어주기를 위한 갖가지 부적절한 수법이 동원된다.

국토교통부가 정한 ‘주택관리업자 및 사업자 선정지침’은 300만원 이상 들어가는 공사는 경쟁 입찰을 하도록 했다. 그러나 경기 A아파트는 공사 금액 4,400만원짜리 현관 로비폰 교체 공사를 여러 달에 걸쳐 300만원 이하로 쪼개 발주하는 식으로 꾸며 수의 계약을 했다.

소방시설 보수공사는 면허를 가진 업체만 할 수 있는데도 서울 B아파트 입주자 대표는 입찰 과정에서 면허 보유 업체 3곳은 떨어뜨리고 대신 수의 계약으로 입찰 참가 자격조차 없는 무자격업체 2곳에 약 1억5,000만원 규모의 공사를 맡겼다.

관리사무소나 입주자대표회의 측이 일부러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거나 조건을 갑자기 바꿔 상당수 업체를 떨어뜨리고 특정 업체만 참여하게 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처럼 ‘그들만의 리그’로 치러진 입찰의 상당수는 공사비가 필요 이상으로 비싸게 책정되고 이는 관리비 인상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서울 C아파트는 방수 및 재도장 공사 입찰 과정에서 입찰 기준을 변경해 4개 회사에만 자격을 부여하고 그 중 특정 회사와 22억7,000만원의 계약을 맺었는데, 서울시는 전문가 자문과 현장 확인 결과 4억8,000만원이 더 비싸게 책정됐다고 지적했다.

업체들의 담합, 짬짜미 의혹도 일고 있다. 서울 D아파트는 방수 및 재도장 공사 입찰 과정에서 5,6개 업체가 관련된 4건(10억3,600만원)의 담합 의혹이 일었고, 특정 업체가 내정 가격 근사치로 낙찰되도록 했다. 이는 같은 회사가 다른 아파트에서 진행한 공사 단가와 비교해 1억1,000만원이 더 높은 가격이었다.

아파트 관리비는 어떻게 구성돼 있나. 주요 관리비 항목들
아파트 관리비는 어떻게 구성돼 있나. 주요 관리비 항목들

송주열 아파트선진화운동본부 대표는 “제한경쟁 입찰을 무분별하게 적용하지 못하게 하고, 설사 경쟁에 제한을 두더라도 조건 자체가 특정 업체에 유리하지 않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지난해 말 ‘주택관리업자 및 사업자 선정지침 일부개정안’을 행정 예고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자본금이나 특정 공법을 업체 선정 조건으로 하려는 아파트는 반드시 중앙공동주택관리지원센터의 자문을 거치도록 했다”라며 “서울시, 경기도 등 일부 지자체가 운영 중인 전문가 자문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또 업체가 아파트 측에 시설물 무상 설치 및 각종 수수료의 할인 등 물품, 금품, 발전기금의 지급 등을 제안하는 경우 해당 평가 항목은 ‘0점’ 처리하도록 했다.

감리 부실 틈타 공사 물량, 인력 부풀리기도

일부 업체들은 아파트 관련 공사에 대한 감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는 틈을 타 공사 물량을 부풀리거나 값싼 중고 부품을 이용하는 식으로 부당 이익을 챙기기도 한다.

서울 E아파트의 경우 건설 회사가 제시한 공사 내역서에는 아스콘 1,170톤을 썼다고 했지만, 실제 확인 결과 현장 반입량은 1,031톤이었다. 업체는 139톤에 해당하는 2,100만원 이상을 따로 챙긴 셈이다. 수도권 F아파트는 간단한 승강기 부품 교체 공사를 하면서 실제 현장에서 일한 인력은 2,3명 정도인데 견적서에는 6명으로 적어 놓기도 했다. 인건비를 부풀려 실제 비용과의 차액만큼을 빼돌리고, 그만큼 입주자 부담 비용을 늘린 셈이다.

송주열 아파트선진화운동본부 대표가 입주민 모두가 아파트 관리비에 관심을 갖고 문제점이 없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
송주열 아파트선진화운동본부 대표가 입주민 모두가 아파트 관리비에 관심을 갖고 문제점이 없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

송주열 대표는 “일반 입주민이 업체 측에 견적서, 작업 일지를 보여 달라고 해도 제출하지 않고 버티곤 한다”며 “그나마 자료 접근이 쉬운 동 대표, 입주자 대표는 자신들이 업체 선정에 간여했기 때문에 소극적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상당수 공사가 겉으로 볼 수 없는 곳에서 이뤄지고 설사 본다 해도 입주민들이 전문 지식 없이 따지기란 쉽지 않고 그렇다고 전문가에게 맡기면 그만큼 비용이 발생한다”며 “법으로 일정 규모 이상의 공사는 감리를 의무화하거나 관리 규약으로 주민검수제도를 제도화하는 방안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6월부터 아파트 내 모든 문서를 생산부터 보관까지 전부 전자결재 시스템을 거치게 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하고 2개 아파트에서 시범 운영 중이다. 서류 분실이 없으니 관리사무소에서는 주민들의 정보 공개에 충실히 응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또 업체가 교체했다는 부품을 일정 기간 의무적으로 보관하도록 해 부적절한 시도를 예방하고 사후에라도 다시 점검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도 있다.

입주자 대표, 관리사무소 관계자의 도덕적 해이 심각

입주자 대표, 관리사무소 측이 비용 관리를 허술하게 하는 문제도 되풀이되고 있다. 특히 집주인이 부담해야 하는 장기수선충당금과 세입자가 관리비로 내야 하는 수선유지비는 용도가 법으로 정해져 있는데도 이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엉뚱한 곳에 쓰는 경우도 있다.

경기 G아파트는 장기수선충당금 사용 대상인 어린이 놀이터, 와이어 로프 수선공사 비용을 세입자도 내는 수선유지비(관리비)에서 지출하다 과태료 1,000만원 처분을 받았다. 부산의 H아파트는 2011년부터 5년 동안 알뜰시장, 광고수입, 재활용품 매각 수입 등 연간 2,000만원의 잡수입을 장부에 반영하지 않은 채 거주자를 위한 관리비 줄이는 데 쓰지 않고 현금으로 인출하다가 국무조정실에 적발됐다.

이 밖에도 경리직원 관리비 횡령, 관리소장과 입주자 대표가 하자보수보증금, 장기수선충당금 중 일부를 개인 용도로 부당 사용, 입대의 총무가 회의 운영 경비를 개인 통장으로 돌려놓기 등 공금을 쌈짓돈 쓰듯 하는 도덕적 해이도 끊이지 않고 있다.

‘관리비 다이어트’성공한 아파트 3곳의 비결은 무엇일까. 강준구 기자
‘관리비 다이어트’성공한 아파트 3곳의 비결은 무엇일까. 강준구 기자

관리비 새는 구멍 찾아야 할 외부 회계 감사까지 부실

관리비가 곳곳에서 새고 있지만 회계 감사는 이를 제대로 거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15년부터 300세대 이상 아파트에 대한 외부회계감사가 의무화했다. 하지만 한국공인회계사회가 전국 9,009개 아파트 단지 중 대량 수임 등으로 감사 품질 저하가 의심되는 3,349개 단지의 외부회계감사보고서에 대해 심리한 결과, 1,800개 단지가 적발됐다. 공사계약 검토 소홀(35.9%), 장기수선충당금 부과 검토 소홀(28.0%), 감사업무 미참여(16.2%) 순이었다. 심지어 특정 공인회계사가 저가 입찰을 통해 무려 156개 단지에 대한 외부 회계 감사 업무를 수임했으나, 감사 대상 단지 전체에서 부실 감사가 적발됐다.

송주열 대표는 견제 기능이 없는 공동주택관리법의 한계도 지적했다. 그는 “설사 입주자대표회의나 관리사무소 측이 수십 억 원짜리 공사와 관련해 문제를 일으켜도 사후에 과태료를 내고 나면 끝인 경우가 많다”며 “입주민이 문제를 찾아내면 중간중간 충분히 의견을 개진하고 일정 인원 이상이 요구하면 관련 자료도 열람하거나 공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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