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만 명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조금만이라도 만질 수 있으면 하는 바람들이 가득 찼다.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 없이 빽빽한 인파 속에 몸은 갇혀 있으나 간절한 마음으로 몇 시간을 버티고 있다.
매년 1월 9일이면 필리핀 수도 마닐라의 키아포 성당에 안치된 성상(聖像) ‘블랙 나자렌(Black Nazarene)’이 거리 행진을 하면 벌어지는 상황이다.
블랙 나자렌은 사람 크기의 예수상으로 1606년 스페인 선교사들에 의해 멕시코에서 왔으며 당시 운반 중인 배에 화재가 났으나 목조 예수상이 검게 그을리기만 하고 온전한 모습을 유지한 것으로 알려지자 이를 기적의 상징으로 여겨 그때부터 ‘블랙 나자렌’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그 후 블랙 나자렌은 400년 동안 수많은 화재와 지진피해, 제2차 세계대전의 폭탄 세례에도 아무 피해 없이 온전한 상태를 유지해 신비한 힘이 깃들었다고 믿겨져 왔다.
필리핀 국민의 80% 이상이 카톨릭 신자인데 검은 예수상이 병을 낫게 해주고 죄를 사하여 준다고 여겨 축제가 시작되면 맨발로 수많은 교인들이 동상을 만지기 위해 구름 같이 몰려든다. 너무 많은 인파가 몰려 동상 근처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예수상이 실린 수레를 끄는 밧줄이라도 잡아보려 애쓴다.
이처럼 광적인 행사로 인해 매년 사상자가 발생하고 경찰 당국도 비상이 걸린다. 다행히 올해는 150만 명이 참여했지만 별다른 사고 없이 무사히 행사가 진행됐다.
성경에 의하면 나사렛 예수는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는 등 기적을 행했다. 하지만 이웃을 사랑하라는 진리가 아닌 기적만을 바라며 자신을 찾는 자를 경계했음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홍인기 기자
정리=박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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