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을 파도 한 우물만 파라’는 속담이 있다. 한 가지 일을 계속 하다 보면 이력이 쌓여서숙련된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공중파 방송의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은 생활 속 장인이나 여러 분야 달인을 발굴해 소개한다. 수십 년 간 한 가지를 연마해 달인의 경지에 오른 사람은 그 분야 최고의 인재라 할 만하다.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상은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가령 보릿고개 시절의 인재상은 부지런하고 솔선수범하는 인재였다. 빠른 경제성장 덕분에 물질적으로 살 만한 세상이 되면서부터는 성실한 인재보다 이해력이 뛰어나고 창의적인 인재가 각광받기 시작했다. 앞으로 4차 산업혁명시대를 이끌어갈 인재는 어떤 인재일까. 사실 4차 산업혁명은 특정 첨단기술이 가져온 기술혁명이 아니다. 여러 가지 기술의 연계와 융합으로 빚어지는 사회전반적 변화이기에 모든 분야에서 변화는 불가피하다.
미래인재상은 산업화 시대의 전통적 인재상과는 다를 것이다. 창의교육 전문가들은 한 분야에만 정통한 ‘I자형 인재’보다는 영역을 넘나들 수 있는 ‘T자형 인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 교육당국이 과학·기술·공학·예술·수학의 소양을 두루 갖춘 인재를 기르기 위해 도입한 STEAM교육도 이런 취지에서일 것이다. 우리말로는 ‘융합인재교육’이라고 한다. 영역을 넘나드는 융합인재는 다양한 관점으로 사고할 수 있고, 복합적 문제해결능력을 갖춘 창의적 인재를 말한다. 통섭형 인재라고도 부른다. 미래인재에게 필요한 덕목과 역량은 뭘까. 아마 학생과 학부모의 최대 관심사일 것이다. 4차 산업혁명 담론의 진원지인 다보스 포럼은 21세기 학생들에게 필요한 스킬 열 여섯 가지를 제시한 바 있다. 4차 산업혁명시대의 인재상이라고 해석해도 무방하다. 기초소양으로는 문해력, 산술능력, 과학소양, ICT소양, 금융소양, 문화적 시민소양 등 여섯 가지, 역량으로는 비판적 사고력 및 문제해결능력, 창의력, 소통능력, 협업능력 등 네 가지, 그리고 성격적 특성으로는 호기심, 진취성, 지구력, 적응력, 리더십, 사회문화적 의식 등 여섯 가지를 꼽았다. 열거된 열 여섯 가지 스킬을 완벽하게 갖춘다면 누가 봐도 훌륭한 창의융합인재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인재는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아주 이상적인 인재에 가깝다.
사람은 누구나 잘 하는 분야가 있다. 모든 분야에서 다 잘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국어, 영어, 수학은 기본이고 과학과 예술, 체육까지 잘하는 인재가 현실적으로 가능하기나 한가. 미래인재에게는 학제적 관심과 초학문적 능력이 필요하다고들 한다. 학문의 경계를 뛰어넘어 다양한 시각으로 현상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또한 다른 분야 전문가와 소통하고 협력할 줄 아는 능력도 필요하다. 그래야 융합인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융합인재가 되기 전에 기본전제가 충족돼야 한다. 우선은 한 분야에서 남보다 탁월한 인재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서양속담에 ‘모든 것을 잘하는 사람은 특별히 잘하는 것은 없다’라고 했다. 동양에서는 이런 사람을 ‘박이부정(博而不精)’이라고 한다. 두루두루 알되 능숙하거나 정밀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인재에게는 능숙하고 정밀한 분야가 먼저다. 쿵푸 액션 스타 브루스 리는 이런 명언을 남겼다. “나는 만 가지 발차기를 구사하는 사람은 두렵지 않다. 내가 두려운 사람은 한 가지 발차기만 연마한 사람이다.” 미래에도 무서운 힘을 발휘하는 사람은 전문가일 것이다. 또 전문가 중에서 융합인재가 나오는 법이다. 여기저기서 얕은 우물만 많이 파려고 하지 말고 한 우물이라도 제대로 파야 한다. 한 우물만 파는 게 위험할 수 있지만, 한 우물도 제대로 안 파는 게 가장 위험하다.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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