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 떔질 대책만
정부 “인플레 심리 확산 우려…
골목상권 물가 잡는다” 또 경고장
자영업자 왜 우리만 쥐어짜나” 한숨
프랜차이즈 가맹비ㆍ임대료 조정 등
구조적 정착 방안 모색 머리 맞대야
일각에선 “최저임금 못 주는 업체
좀비처럼 유지시키는 것 능사 아냐” 목소리도
서울 여의도에서 아내(주방 담당)와 함께 한식뷔페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62)씨는 고심 끝에 이달부터 1인분 가격을 6,000원에서 7,000원으로 1,000원 인상했다. 월 2,000만원 가량 매출에도 아르바이트생 3명의 인건비(420만원)와 재료비(800만원) 등은 어쩔 수 없지만 올해 100만원이나 인상된 임대료 300만원까지 빼면 부부가 손에 쥐는 돈은 400여만원 안팎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11일 “최소 운영 인력마저 줄이기는 어려워 가격을 올렸다”고 했다.
이날 정부는 또다시 김씨 같은 자영업자들을 향해 강력한 경고장을 날렸다. 고형권 기획재정부 1차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차 물가관계장관회의 및 최저임금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빌미로 한 인플레 심리 확산 가능성에 선제 대응할 필요가 있다”며 “범 정부 차원의 물가관리를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정거래위원회를 중심으로 불법적 가격인상 행위 감시를 강화하고, 소비자단체를 통해서도 김밥ㆍ치킨ㆍ햄버거 등 외식 프랜차이즈 업체가 최저임금에 편승해 가격 인생을 했는지를 면밀히 분석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5일에도 고 차관은 같은 취지의 발언을 했다. 김씨는 “최저임금은 올라서 비용 부담은 늘었는데 가격 인상도 하지 말라고 하면, 도대체 그 부담을 언제까지 자영업자가 떠안으란 말이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역대 최대폭(16.4%)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혼란을 막기 위해 정부가 총력대응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억누르고 쥐어짜고 땜질하는 대책이 대부분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올해 1년에 그칠 것이 아니라 ‘2020년 1만원 달성’ 공약처럼 매년 꾸준히 이뤄져야 하는 것임을 감안하면, 이런 임시 처방으로 버틸 수 있는 데는 한계가 분명하다. 억누르는 가격 인상은 언젠가는 폭발할 수밖에 없고, 한시적인 자금(일자리안정자금)과 제도(4대보험 인하) 지원 또한 중단되는 순간 ‘절벽효과’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 인상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전방위적인 사회 체질 개선이 없이는 최저임금 정상화는 급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영세업자나 소상공인 부담에서 대해서는 정부가 이미 대책을 마련했다”며 일자리안정자금 3조원의 역할에 상당한 자신감을 표했다. 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상당한 온도 차가 있다. 서울 서초구에서 개인 카페를 운영하는 이모(30)씨는 일자리안정자금 신청을 하지 않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이씨는 “신청방식이 복잡할 뿐만 아니라 근로시간에 따른 차등지원으로 금액이 적어 차라리 다른 비용을 줄이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고용보험 가입이 전제여서 현장에서는 한 해뿐인 지원금보다 4대 보험 부담을 회피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 지원을 꺼리는 업체들도 많은 게 사실이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1, 2년 지원이 더 늘어난다고 해도 기한이 한정적인데다 지원 기준을 넘는 30인 이상 중소 협력업체들은 원청을 상대로 납품단가 협상도 어려워 결국 인건비 부담을 스스로 져야 하는 등 사각지대도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일 이어지고 있는 골목 상권의 물가를 잡겠다는 정부의 으름장도 현실과는 동떨어졌다는 분석이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고정비용이 상당한 영세 자영업자들은 비용을 외부화할 수 있는 것이 인건비 깎기와 가격 상승의 선택지로 좁아질 수밖에 없다”라며 “이마저도 주변 상권을 의식해 불가피하게 약간의 가격 상승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이를 막게 되면 사업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도 “가격이 오르는 것은 비용이 오르기 때문인 것도 있는데, 이런 것까지 정부가 압박하면 나중에 물가 인상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최저임금 인상이 구조적으로 정착될 수 있으려면 적절한 가격 인상은 사회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오상봉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가격 인상은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최저임금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여러 출구 중 하나”라며 “국민들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을 조금씩 나눠 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건은 자영업자들이 조절하기 힘든 임대료와 프랜차이즈 가맹수수료 등 그간 굳건했던 ‘고정 비용’을 사회가 함께 부담하는 상생의 판을 짜는데 있다. 정부도 임대료 인상률 상한을 5%로 제한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고, 표준가맹계약서를 개정해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비용이 증가하는 경우 가맹점주가 본사에 가맹금액 조정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대책들을 마련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억누르면 나타나는 ‘갑’의 또다른 횡포에 자영업자들은 여전히 노출돼 있다. 경기 수원시에서 프랜차이즈 치킨집을 운영하는 김모(35)씨는 “지난해말 사은품 명목으로 본사로부터 핸드크림을 강매 당하다시피 했다”라며 “인건비 인상분보다 본사에 내는 수수료와 가맹점주 의견과 상관없이 진행된 배달 대행업체 사용 등 본사의 횡포가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자영업자들이 정리되는 수순을 용인할 수 있도록 사회 안전망도 갖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순원 교수는 “정부의 지원책에도 아르바이트생들의 최저임금을 지급할 수 없는 업체를 좀비처럼 유지시키기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며 “최대한 떠받치기는 해야겠지만 자연스러운 구조조정도 병행이 돼야 최저임금 정상화가 연착륙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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