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도 질투한 조각가 자코메티
한가람미술관서 국내 첫 회고전
‘걷는 사람’ 등 2兆가치 120점
스위스 작가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 예술적으로 소개하면 실존주의 미학의 20세기 최고 거장, 세속적으로 설명하면 피카소 그림보다 비싼 조각을 빚은 작가. 그의 국내 첫 회고전이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대표작 ‘걷는 사람(Walkig Man)’(1960)과 유작인 ‘앉아 있는 사람의 흉상(로타르 III)'(1965~1966)의 석고 원본을 비롯해 조각, 회화, 드로잉, 판화 등 약 120점이 나왔다. 작품 평가액은 2조1,000억원으로, 2015년 마크 로스코 전시(2조5,000억원)에 이어 국내 전시 사상 두 번째로 큰 금액이다.
하이라이트는 단독 전시실인 ‘묵상의 방’에 우뚝 서 있는 ‘걷는 사람’이다. 키 188㎝에 기이하게 긴 팔과 다리, 한 겹 겨우 남은 살갗마저 상처투성이인 말라 비틀어진 몸. 노인의 염한 시신을 닮은 형상에서 고통과 고독만 읽는다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부릅뜬 눈과 꽉 쥔 주먹, 성큼 내딛은 오른발. 자코메티가 말하려 한 건, 일어나 끝내 다시 걷는 자의 용기와 의지다. 앙상한 ‘걷는 사람’이 전혀 위태로워 보이지 않는 이유다. “모든 것을 잃었을 때 그 모든 걸 포기하는 대신 계속 걸어 나가야 한다. 이것이 환상 같은 감정일지라도 무언가 새로운 것이 다시 시작될 것이다.” 자코메티의 글이다.
‘걷는 사람’과 눈을 맞춰 보자. 자코메티는 눈을 제외한 인물 조각의 모든 부분을 극단적으로 걷어 냈다. 육체성을 과시한 미켈란젤로, 오귀스트 로댕의 조각과 반대의 접근이다. 자코메티는 육체는 한 줌으로 돌아가는 나약한 껍데기일 뿐, 인간 됨과 생명력의 본질은 눈빛에 있다고 봤다. 그래서 조각을 늘 눈부터 빚었다. 자코메티는 스스로 강인한 사람은 아니었다. 스무 살 때 여행지에서 동행의 죽음을 목격하고 평생 죽음을 두려워했다. 밤에 불을 켜고 잘 정도였다. 그런 그는 ‘눈빛이 살아 있는 한 죽지 않는 것’이라는 믿음에 매달렸는지도 모른다.
‘걷는 사람’의 청동 에디션이 아닌 원본이 아시아에 전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프랑스 자코메티 재단은 “한국은 언제 전쟁 날지 모르는 나라”라며 대여를 꺼려했다고 한다. 청동 에디션 중 하나는 2010년 영국 소더비경매에서 1억430만달러(약 1,160억원)에 낙찰돼 당시 피카소의 ‘파이프를 든 소년’의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다. 자코메티와 피카소는 한때 절친이었고, 피카소가 자코메티의 재능을 시기하는 등 갈등을 빚은 끝에 절교했다.
자코메티는 프랑스 파리 몽파르나스 작업실에서 ‘로타르 좌상’을 빚다 심장 이상으로 입원한 뒤 영영 작품 앞에 앉지 못했다. 미완의 유작을 완성한 건 평생 조수이자 모델로 자코메티를 도운 동생 디에고였다. 유작 모델인 엘리 로타르는 반짝 인기를 누리다 추락한 사진 작가다. 유작을 해탈한 구도자의 등신불 형상으로 만든 건, 인생의 덧없음을 절감해서일까. 전시는 4월 15일까지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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