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무사히…”를 바랄 뿐
잇단 타워크레인 사고로 머리 위가 불안하다. 거대한 철재 구조물이 언제 어디서 또 쓰러질지 모를 일이다. 정부가 뒤늦게 일제 점검에 나섰지만 노후화와 불량 부품, 크고 작은 사고로 ‘골병’이 든 타워크레인은 오늘도 버젓이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
#’기우뚱’ 불안한데도 ‘정상’
5일 경기 남양주시의 한 건설 현장에서 기둥(마스트) 윗부분이 한쪽으로 기운 타워크레인이 위태롭게 서 있다. 건설사에 따르면 이 크레인은 지난해 12월 정기 검사를 통과했다. 한 검사기관 관계자는 9일 “약간 기울어졌더라도 마스트 구조 상 틈이 발견되지 않으면 통과된다”고 밝혔지만 현장에 동행한 타워크레인 조종기사 A씨의 말은 달랐다. 그는 “이 장비는 지난해 8월 기둥을 지면에 고정하는 ‘베이직 마스트’에서 틈이 발견됐다”며 “완전히 해체하지 않고 고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박종국 시민안전감시센터 대표는 “지지대 위로 마스트가 너무 높이 올라와 위험할 수 있으니 추가 지지대 설치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녹슬고 깨지고… 골병 든 타워크레인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은 노후한 장비와 부실한 관리 실태를 틈틈이 휴대폰으로 촬영해 왔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타워크레인분과와 한국노총 전국타워크레인 설치ㆍ해체 노조를 통해 입수한 사진 속엔 충격적인 장면들이 담겨 있다. 조종실 바닥과 본체를 연결한 부위가 부식돼 이탈하거나 하중을 견딜 마스트 구조가 갈라지고 볼트와 너트도 풀어져 있다. 경기 화성시의 한 건설현장에선 크레인 인상 작업 중 유압 실린더가 폭발했는데도 해체하지 않고 부품만 교체해 썼다. 지난해 12월 5명의 사상자를 낸 평택 타워크레인 사고도 인상 작업 중 발생했다. 경남 김해시에선 지브(물건을 들어 올리는 팔 부분)가 부러지는 대형 사고가 났지만 두 경우 모두 사고 신고조차 되지 않았다. 경력 16년의 김귀현 타워크레인 조종기사는 “아찔한 사고가 끊이지 않지만 신고는커녕 정비만 요구해도 다른 기사로 대체된다”고 전했다.
#믿을 수 없는 장비가 사고 위험 높여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은 구조 약화와 작동 결함 등 사고 위험이 큰 노후 크레인이 너무 많다고 입을 모은다. 2017년 9월 기준 국내에 등록된 타워크레인은 총 6,074대, 이중 20.9%에 해당하는 1,268대가 20년 이상 된 노후 장비다. 시행 예정인 정부의 안전성 관리 방안에 따르면 ‘사용 제한’에 걸릴 나이지만 호황을 맞은 건설현장에선 아직 ‘한창 때’로 통한다. 심지어 30여년 전 63빌딩 건설에 쓰인 크레인도 현재 경기 수원시의 건설현장에 투입돼 있다.
등록된 연식마저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수입 등록 절차가 허술하다 보니 수입 과정에서 연식을 세탁한 중고 크레인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조차 되지 않는다. 크레인 해체 시 폐기해야 할 볼트와 너트를 수차례 재활용하거나 부품을 임의로 제작해 사용하는 경우, 제조사와 제조일자가 각기 다른 장비를 짜깁기해 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타워크레인 위가 일터인 노동자들에게 두려움은 일상이 됐다. 김귀현 조종기사는 “목숨이 달린 장비인데도 어느 부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 수가 없어 항상 불안하다. 오늘은 무사히 마쳤지만 내일 저 장비에 또 올라갈 생각을 하면 두려움이 앞선다”고 말했다.
#원인1. 돈이 우선, 안전은 뒷전인 임대 구조
타워크레인이 이같이 골병이 든 가장 큰 원인은 최저입찰제를 통한 크레인 임대 계약 구조에 있다. 건설사와 계약한 임대업체가 크레인과 조종기사, 설치ㆍ해체기사를 공급하는데, 경쟁이 심해질수록 값싼 장비와 인력을 투입해야 하고 유지 관리에 대한 투자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최근 건설경기 호황으로 크레인 수요가 늘면서 노후ㆍ불량 장비가 마구잡이로 투입되거나 임대업체 간의 빈번한 재임대로 인해 장비 관리는 더욱 허술해지고 있다.
#원인2. ‘을’이 ‘갑’을 검사하는 시스템
검사를 받는 임대업체가 검사기관을 선정하는 기형적인 구조 하에서 검사가 제대로 이루어질 리 없다. 검사를 깐깐하게 하는 기관일수록 실적이 저조하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정부가 최근 안전검사 강화 방안을 내놓았지만 근본적 구조 개선은 쉽지 않아 보인다. 박종국 대표는 “사고 예방을 위해 장비 검사 항목을 세분화하고 노후 장비의 설치 전 검수와 검사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박미소 인턴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