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대지진 때 체류 허용한
임시보호신분 박탈ㆍ송환 추진
美서 보내는 송금액이 GDP 17%
인구 670만명, 1인당 국내총생산(GDP) 4,340달러(2016년)의 중남미 소국 엘살바도르가 시름에 빠졌다. 미국이 25만명에 달하는 이 나라 출신 임시 이민자에 대한 보호신분을 박탈하고 송환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8일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이날 미 국토안보부는 엘살바도르 출신 이민자들에 대한 임시보호신분(Temporary Protected StatusㆍTPS) 갱신을 중단키로 결정했다. 3월 만료 예정인 것을 더 이상 연장해주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2001년 이후 TPS에 의지해 머물고 있는 이민자들은 새로운 지위를 확보하거나, 그렇지 못하면 2019년 9월9일까지 미국을 떠나야 한다. TPS는 1990년 미 의회가 자연재해, 내란 등으로 고통 받는 국가의 난민들의 미국 체류를 임시로 용인하는 제도다. 미 정부는 2001년 엘살바도르 대지진 당시 엘살바도르 난민에게 TPS를 부여했다.
지진 피해가 대부분 회복됐기 때문에 TPS를 종료한다는 게 미국 입장이지만, 인권단체들은 본국으로 돌아가는 엘살바도르 이민자들이 안전하지 못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범죄조직이 활개를 치는 엘살바도르는 2016년 기준 살인율이 인구 10만명당 81.2명(한국 0.9명)으로 세계적으로도 최악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위험한 위협 중 하나’라고 언급했던 갱단 ‘MS-13’의 최대 근거지도 엘살바도르다. TPS 종료와 별도로 트럼프 행정부는 이 갱단 조직원에 대한 검거 작업을 벌이고 있다.
경제적 파장도 상당할 전망이다. 엘살바도르는 해외에 거주하는 이민자들이 본국으로 송금하는 자금이 국내총생산(GDP)의 17%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번 조치로 본국 송환 위기에 놓인 25만명은 엘살바도르 인구의 3%에 달하는 규모다. 엘살바도르 수도 산살바도르 소재 비영리기구에서 일하는 로베르토 루비아 파비앙은 WP와의 인터뷰에서 “송금액은 엘살바로드 경제를 지지하는 기둥”이라고 말했다.
20년 가까이 거주하며 미국 사회에 녹아 든 이민자들을 내쫓기로 하면서 비난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이민자 권리 옹호단체인 알리안싸아메리카의 오스카 차콘 설립자는 “TPS 소지자들은 정기적으로 국토안보부 심사를 받는 이들이어서 영주권을 가진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6년 기준 TPS 보유자의 31.9%는 미국에서 집을 소유하고 있고, 60% 이상은 최소 1명의 미국 시민권을 가진 자녀를 두고 있다. 엘살바도르 이민자 부모를 둔 로드만 세라노는 “가족들을 찢어 놓는 것 외에 어떤 실익도 없는 잔인한 조치”라고 비판했다.
엘살바도르 정부도 외교적 노력을 통해 이번 조치를 최대한 막겠다는 방침이다. 휴고 마르티네스 엘살바도르 외무장관은 “우리는 미 의회를 설득, 우리 동포들이 그대로 거주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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